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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니 마르티노의 무덤 앞에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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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가 쓴 「교우론」 의 첫 줄은 ‘벗은 제2의 나’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짤막한 한 줄이 동아시아 지식인을 강타했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 이른바 연암 그룹의 이 책에 대한 열광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의 문집 속에 이 책의 독서 흔적이 뜻밖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 자취를 따라가다가 다시 마르티니 마르티노(1614-1661), 중국명 위광국(衛匡國)의 「구우편」(逑友篇)을 만났다. 1599년에 간행된 마테오 리치의 책보다 60여 년 뒤에 나온 서양 우정론의 확장 버전이었다. 책을 읽는데 제2장 ‘참된 벗과 가짜 벗의 구별’에 수록된 삽화가 <부자간의 친구 시험> 또는 <진정한 우정>이란 제목으로 익히 알려진 우리 옛 설화의 근원임을 깨닫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들이 친구가 많은 것을 자랑했다. 늙은 아버지가 아들의 우정을 시험하려고, 실수로 사람을 죽였으니 도와달라고 청하게 했다. 자신의 모든 친구가 도움을 거절한 뒤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가자 두말 않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시체로 꾸며 거적에 말아 지게에 얹고 갔던 돼지를 안주 삼아 기쁘게 술자리를 갖고 파하는 엔딩이 덧붙어 있다. 「교우론」과 달리 「구우편」의 독서 흔적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이 쑥 내려갔다.


마침 2023년 3월, 마지막 연구 학기를 맞아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의 초청으로 6개월간 보스턴에 머물 기회를 가졌다. 그곳 도서관에서 나는 이 두 책에 관한 자료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엄청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르티니의 중국에 관한 여러 라틴어 저작과 그에 관한 이탈리아어 전집 및 논문집까지 모두 찾아보았다. 서양에 남은 네 종류의 다른 초상화도 찾아냈다. 귀국 후 나는 동아시아에서 우정론 열풍을 불러온 「교우론」과 「구우편」을 정리 번역해서 「중국선비, 우정을 논하다」(김영사)를 펴냈다.


지난 2024년 6월 말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항저우로 건너가서 항저우 대학 근처에 있는 마르티니의 무덤을 찾아갔다. 큰 키에 영성이 넘치는 풍모를 지녔던 마르티니는 세상을 뜬 뒤 수십 년 동안 시신이 조금도 썩지 않아 그곳 신자들에게 신처럼 숭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무덤은 문화대혁명 당시 파괴된 것을 명맥만 남겨 보존한 것이다. 입구에 ‘위광국 전교사 기념관’이란 글씨가 고딕식 원주 위 대리석 문루에 새겨져 있었다. 안쪽 패루에는 앞면에 ‘천주성교수사지묘’(天主聖敎修士之墓)라 쓰고, 뒷면에는 ‘아신육신지부활’(我信肉身之復活)이라고 새겨 놓았다. 공산국가에서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는 글이 새겨진 서양 선교사의 무덤을 문물보호단위로 관리 보존하고 있었다.


우중에 그것도 새 단장을 위한 공사 중이라 온통 어지러운 상태의 그의 무덤 앞에 선 감회가 남달랐다. 이들이 목숨을 바쳐 헌신했던 중국 선교의 노력이 그들의 저작과 함께 조선에까지 닿아,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섭리의 손길로 이어진 경로에 대해 한동안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글 _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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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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