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탁월한 성직자이자 교육자였던 요한 보스코는 어린이·청소년·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살레시오 수도회와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설했으며 1934년 시성됐습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조반니 보스코’, 한국에선 통용 발음으로 호칭하는 예에 따라 ‘요한 보스코’로 불리지만 우리에겐 돈 보스코(Don Bosco)라는 별칭으로 더 친숙합니다.
19세기 산업화가 한창이던 이탈리아에는 거리에서 방황하고 범죄를 저질러 사회가 외면하는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아동 인권의 개념이 희박하던 시대였기에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며 성당 마당을 내어주고 그 역시 어울려 즐겁게 놀았습니다.
“죄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뛰놀아라.”
엄숙함과 경건함이 성직자에게 강조되던 시대에 그의 행동은 파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주변에서 아이들의 소란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어쩔 수 없이 술집 옆 허름한 집에서 오라토리오(일종의 기숙학교)를 시작합니다. 오라토리오는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공부를 가르치는 곳으로 성장합니다. 운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후원을 받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라토리오는 단 한 번도 풍족했던 적이 없고 항상 적자로 허덕였습니다.
한번은 피정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군밤 세 자루를 마련해야 하는데 한 자루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따라온 수백 명의 아이에게 충분히 나눠주고도 한참이 남았더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군밤을 손에 가득 쥐고 “돈 보스코는 성인이시다!” 외쳤다고 합니다.
올해 아들은 살레시오 수도회 산하의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초등학교는 수녀회, 중·고등학교는 수도회가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들 학교에서 군밤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탈리아는 가을이면 거리 곳곳에 군밤을 굽는 구수한 향기로 가득합니다. 이탈리아 군밤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아시나요? 학교에서 온 공문에 돈 보스코의 ‘군밤의 기적’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축제 당일 학교 운동장에는 초·중·고교 학생들과 가족·친척들까지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축제를 진행하는 선생님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운동장에는 축구·농구·배구공이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스스로 그룹을 만들어 놀았습니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아이들,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대화에 푹 빠진 부모들과 운동장 한편에서 군밤을 굽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군밤 굽는 모습을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갓 구운 군밤을 하나씩 쥐어 주었습니다. 그 풍경은 마치 어느 마을의 광장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안전한 광장에서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돈 보스코는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십시오.”
예정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군밤을 받을 수 있었지만 흰 종이봉투에 담긴 뜨끈한 군밤을 두 손으로 받는 모두의 표정은 행복을 닮아있었습니다. 다들 군밤을 까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달디단 군밤을 먹는 아이였습니다. 그날 밤 군밤 자루에서는 끊임없이 뜨끈한 군밤 봉투가 나왔습니다. 밤이 늦도록 그 누구도 이 광장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