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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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우리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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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북스 리브로에 주문해 놓은 책을 찾아 나오는데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 싸움판이 벌어진 게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단속반이 나와 노숙인들을 거칠게 쫓아내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빈 박스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거나 누워있는 노숙인들이 모여있었고 어떨 땐,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앉아있기도 했다.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냄새 때문인지 버스를 기다리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 민원을 넣어서인지 가끔 단속반에서 나와 실랑이가 붙곤 했다.


한참을 고성이 오가다 그들 중 한 남자가 갑자기 웃통을 훌떡 벗어 던지더니 경찰에게 맞섰다.


“왜 왜 왜 우리가 왜!!!”


사람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단속반도 더 이상 강압적인 행동을 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웃통을 벗고 달려드는 아저씨와 경찰들 사이에 껴서 싸움을 말리던 노숙인 한 분이 갑자기 ‘왜왜왜 아저씨’의 뺨을 냅다 갈겼다.


“정신 차려 새꺄!!!”


뺨을 맞은 아저씨의 눈이 벌게졌다. 계속 이렇게 맞서다가는 경찰서로 연행될지도 모르니 먼저 선수를 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르르 몰려있던 노숙인 중 한 명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박스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는 막걸리 통을 주웠고 내 곁에 서있던 할아버지는 분하다는 듯 버스 정류장 쇠기둥을 맨손으로 퉁퉁 쳐댔다. 거기서 쫓겨난 사람들은 수원역 지하도로 자리를 옮기거나 골목에 숨어서 단속반이 가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 서 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왜 왜 우리가 왜!”라고 부르짖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계속 마음을 긁었다. 아마도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왜 우리가 여기서 쫓겨나야 하는지 말해 보란 말입니다!”


단속반도 거기에 서 있던 많은 사람도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민원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냄새나고 불쾌하니 당신들이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다고 말한다면 그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건 질문이 아닌 항변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노숙인도 이런 식으로 함부로 쫓아내고 몰아내선 안 되는 거라는.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행복한 사회’


이런 아름다운 문구들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지만 우리는 과연 그런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며칠 전, 맨발로 찾아온 노숙인에게 신발을 사서 신겨 보낸 가게 주인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열심히 일해 신발값을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는 이야기. 누군가의 이런 작은 선행 속에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주님을 본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이런 작은 배려와 따듯한 마음이 누군가를 살리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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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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