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가 세 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개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을 위해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기체류 미등록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이 내년 3월 종료됨에 따라, 지난 4년간 운영한 해당 제도의 의미와 문제점, 향후 관련 제도 마련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논의했다.
여러 발제들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제는 청년이 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증언이었다. 다섯 명의 청년들 중 네 명은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새롭게 이주한 도시에서 전학갈 학교를 찾지 못해, 더 정확히는 학교마다 전학을 거부해 자격요건을 상실하면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에 토론회 참석자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잠깐의 휴식 후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 법무부 이민조사과 사무관이 토론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싶다고 해, 발제자와 토론자는 물론 참석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 역시 얼마 전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게 된 본당 이주민 신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 단위 외국인출입관리소 운영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외국인출입관리소로부터 연락을 받아 다음날 방문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장에 이야기를 해 겨우 오전 반차를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구제대책에 따르면 부모 각각 미등록 체류기간에 따른 벌금을 내야 하는데, 70를 감면해 주기는 하더라도 이주민들이 하루 만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이 사실을 알려줘서 급히 본당 사회사목기금으로 지원을 하고 천천히 갚아 나가는 것으로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벌금을 마련하지 못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는 법무부에 이 구제대책을 계속 이어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참석한 법무부 사무관은 구제대책을 ‘악용’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며 내부적으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대로 내년 3월 구제대책이 종료되면 3000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언제 강제출국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초?중?고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모여 ‘WE ARE ALL DREAMERS’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지난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회견문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은 ”구제대책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정적인 거주와 정책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교육 이수’라는 신청 대상 요건, 신청 시 부모님이 내야 하는 커다란 범칙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은 출국하셔야 한다는 규정은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며 “무엇보다 구제대책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이뤄지고 고교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대학 진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우리에게는 머무를 권리가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회견문 말미의 구호에 참 마음이 아팠다. 선주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걱정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