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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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국, 불신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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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조용히 공원 산책이나 할까 싶어 나선 길, 저만치 앞에서 아저씨 한 분이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 남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얼른 지나가려 했지만 티 나게 빨리 걸은 게 오히려 눈에 띄었던지 아저씨가 방향을 획 틀더니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예수 믿으세요. 불신지옥! 아시죠?”


아저씨는 계속 따라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걸었지만 웬만해선 떨어져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랜만에 조용히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 정리나 좀 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쳤다.


“예수님 믿어야 천국 가요. 이거 읽어보면 다 나옵니다.”


화를 꾹꾹 참으며 처음엔 점잖게 말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그만 따라오세요.”


하지만 아저씨는 껌딱지처럼 내 곁에 달라붙어 계속 말을 시켰다. 할 수 없이 나는 아저씨 쪽으로 돌아서서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아저씨. 예수님 믿으면 진짜 천국 가요?”


“그럼요. 천국 갑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저희에게...”


“그러니까 언제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갑자기 내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잠시 주춤하는 아저씨. 그 틈을 노려 쐐기를 박았다.


“그럼 전 죽기 하루 전부터 믿을게요. 언제든 상관없다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따라오지 마세요. 아셨죠?”


“아니 그래도,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알고...”


손에 전단지를 잔뜩 들고 서있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후줄근한 차림에 볼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마른 얼굴. 언제든 천국이 보장된 삶을 사는 사람치고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저씨 손에 들린 ‘불신지옥’ 종이를 받아주고 잠시 얘기라도 들어주면 될 일이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 신자지만 여태 살면서 누구에게 성당을 다녀야 구원받는다는 말을 해본 적 없다. 하물며 내 자식에게도 말이다. 첫째는 불교 쪽이 끌린다기에 그럼 절에 다니라 했고, 군대에 들어가 늘 배가 고팠던 둘째는 초코파이를 얻어먹기 위해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본인의 선택으로 믿기 시작한 종교가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고 불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는 건 일종의 협박이다. 그러므로 내가 좀 전에 한 행동은 ‘정당방위’라 볼 수 있다.


영화 ‘신과 함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승에서 진심어린 용서를 받은 자는 저승에서 누군가가 다시 심판할 자격이 없다.”


죄를 지었으면 죽기 전에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거지, 실컷 죄짓고 살다가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저 교회 목사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전단지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해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이 추운 날, 사람들 내보내 고생시키지 말고 당신이나 부끄럽지 않게 사세요. 믿지 않아 지옥을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남들에게 무엇을 잘못하고 사는지 모르기 때문 아니겠어요? 올바른 종교는, 전단지 나눠주며 겁이나 주는 게 아니라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오늘 하루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몸소 보여주는 겁니다. 신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지 구원 팔이나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입을 놀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야산에 파묻힐 수 있으니, 일단은 안 하는 걸로. 


아저씨는 불신지옥에 떨어질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노상 전도의 발걸음을 돌렸다. ‘천국에 가기 위해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은 따르지 않으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공허한 헛소리가 종교라는 이름을 달고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평화로운 주말 아침을 망쳐놓지도 말고!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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