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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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평화칼럼] 모든 성인의 날 전야제

이상근 마태오(미국 테네시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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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계절마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봄이 오면 사순 시기가 지나 부활절이 찾아오고, 집집마다 부활절 달걀과 토끼 장식이 눈에 띈다. 여름이 되면 독립기념일의 활기로 가득하고, 가을이 오면 추수감사절을 지나 성탄절과 새해로 이어지는 연말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이, 10월 마지막 날에는 누구나 아는 그 유명한 핼러윈이 찾아온다.

핼러윈이 되면 거리 풍경이 확 바뀐다. 유령·무덤·거미줄로 장식된 집들이 거리 곳곳에 나타나면서 연말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처음에는 이런 풍경이 흥미로웠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 문화가 여전히 낯설다. 모든 집이 장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정이 이 축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거리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장난스러운 장식들도 많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징그럽거나 잔인한 이미지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부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10월 31일 밤이 되면 거리에는 온갖 코스튬 복장을 입은 아이들이 모여 나온다. 슈퍼 히어로나 인기 캐릭터로 꾸민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유령이나 귀신 복장을 한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이 즐겁게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간혹 지나치게 징그럽거나 어른조차 불편해지는 복장을 보면 이 문화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지곤 한다. 그래도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올해도 공룡과 외계인 복장을 한 아들 둘, 그리고 다람쥐 옷을 입은 아내와 함께 집집마다 돌며 사탕과 과자를 받으러 다녔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보는 들뜬 축제 분위기와 아이들의 웃음은 그래도 기분 좋게 다가온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 축제의 원래 의미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곤 한다.

핼러윈은 원래 이런 날이 아니다. ‘Halloween’이라는 이름조차 사실은 ‘All Hallow’s Eve’ , 즉 ‘모든 성인의 날 전야제’ 에서 온 것이다. 이튿날은 ‘모든 성인의 날’로, 성인들의 거룩함을 기리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축일이다. 모든 성인의 날은 천국에 있는 성인들의 전구를 기리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며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초대의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유령·좀비·죽음을 연상케 하는 문화로 변질되었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다음날인 ‘모든 성인의 날’은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의무 축일로 지켜진다. 그래서 아침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의 긴 줄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 모두 코스튬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귀신도, 괴물도, 좀비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성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미카엘 대천사, 심지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꾸민 아이들까지 보였다. 그 전날 느꼈던 불편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복장을 보며, 그들이 단순히 성인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진정 성인들처럼 느껴졌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라고 하셨으니, 그들이 성인이 아니라면 누가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전날,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했던 거리와는 정반대였다. 모든 성인의 날 아침에 보았던 풍경은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할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내년에는 너희들도 성인 복장 할래?” 대답은 슈퍼 히어로를 하고 싶다는데,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얘들아, 진짜 슈퍼 히어로는 저 성인분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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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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