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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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 씨와 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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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선물로 받고 세상에 선물로 와준 리사(가명)와 엄마 카티(가명) 씨를 만났다. 카티 씨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에게 와준 소중한 생명을 지켜 낳은 딸 리사에게 세상을 선물로 준 강직한 엄마다.


이제 3살이 된 리사의 눈망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사랑스런 귀여움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리사는 어떤 꾸밈도 없는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누구보다도 신나게 살고 있다. 카티 씨는 완벽한 엄마로서의 준비는 부족했지만 아이의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채워주는 리사를 보며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마음의 준비로 건강하고 밝은 미래의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몇 년 전 E6 비자를 발급받아 우리나라에서 일 해온 외국인 노동자 카티 씨는 일터에서 한국인 남성을 만났고 얼마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한국인 아이 아빠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낙태할 것을 종용하며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상태다. 몹시 두려웠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로 홀로 이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마주해야 할 여러 문제가 너무 무서웠다.


그사이 아이 아빠는 자취를 감췄다. 가톨릭 신자인 카티 씨는 배는 불러오고 갈 곳도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생명문제는 강자에 의해 약자의 생명이 유린당하는 것이며, 낙태, 안락사, 폭력, 전쟁 등을 통해서 위협받는 생명들은 힘센 자들의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이다.”(박정우 신부, 가톨릭신문 2007년 5월 20일자 칼럼 중에서)


그렇다, 강자에 의해 생명이 생겼지만 그 강자에 의해 다시 생명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켜내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들이다. 그 약자들은 여성이며 엄마다.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었나이다.”(시편 119, 37) 하느님의 길을 걸어 얻은 생명은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엄성을 갖추기에 그 누구도 타인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없고 또 가져서도 안 된다.


리사는 아직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카티 씨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리사와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지청구 소송, DNA 검사를 통해 가족관계 확인을 해야만 엄마와 함께 안전하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카티 씨에게 그는 이를 계속 거부하며 아이의 존재를 회피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리사는 아빠의 존재를 묻기 시작하고 있다. 카티 씨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과 아빠를 찾는 리사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다. 아이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카티 씨는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야 한다. 꼭꼭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아빠의 행동은 안타깝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또다시 가족관계 확인을 위한 인지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이런 소송 없이도 아이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아빠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법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18세까지 양육비를 주도록 돼있는 법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는 나쁜 아빠들에겐 강제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외줄타기를 마다하지 않고 아이를 지키려 하는 많은 카티 씨 같은 약자들의 삶에 희망이 피어나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 있는 동안 책임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리사와의 삶을 살고 싶은 나라에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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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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