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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교리 _ 성체성사, 그 신비 속으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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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공의회 당시 모습. 이탈리아 트렌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소장

 


트리엔트 공의회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와 ‘제사’(Sacrificium)라는 두 단어로 성체성사에 대한 종교개혁론자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찬례에 있어서 주님의 존재론적 현존은 더 이상 문제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불분명하던 성체 안의 주님의 현존은 지속적인 교회의 성사생활 안에서 많은 신자에게 보다 분명한 것으로 체험되고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체 안에 주님의 현존을 어떤 철학적 논증으로 분석하여 새롭게 제시하기보다는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어떻게 하면 보다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되었다. 신자들은 성체 안에 주님이 어떻게 현존하게 되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 현존하여 있는 주님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느끼고 사랑을 나누며 그분을 체험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성체 신비에 대해 제안된 새로운 이해 방법이 ‘의미변화’(transsignificatio)와 ‘목적변화설’(transfinalizatio)이다. 이를테면 한 장의 편지는 단순히 한 장의 종이가 아니라 친교를 나누는 과정에서의 전달매체이다. 또는 한 나라의 국기를 그린 천은 단순한 한 장의 섬유 조각이 아니라 주권을 상징하는 사실적 표상이 된다. 여기서 한 개별적 실재의 존재, 이를테면 종이와 천의 존재는 편지나 국기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즉 한 실재의 본질 또는 실체는 그 실재의 의미와 함께 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음식은 먹거나 마시는 식사와의 관계 연관성으로부터, 본래의 ‘음식’이 된다. 더 나아가 음식은 식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으로서 존재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빵과 포도주는 더이상 자체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친교를 뜻하는 표징이며 그와의 친교를 가능케 하는 매체가 될 때 앞에서 말한 의미변화가 발생하며 실체변화가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빵과 포도주가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부활하여 현양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식사에 초대된 신앙인들과 맺게 되면서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며 새로운 표징의 개념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빵과 포도주는 신적 작용을 통해서 단순한 자기 관련성을 상실하고 사물자체의 변화를 동반하는 결정적 의미변화를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성찬 안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꼭 물리적인 ‘실체변화’를 논하지 않고도 그 존재의 의미를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실체변화’, 즉 ‘본체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설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1965년 반포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신앙의 신비」나 1967년 발표된 교황청 지침서는 개괄적 실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심리학적 경위만을 고려하는 ‘의미변화설’이나 ‘목적변화설’을 배격하고 있다. 회칙 「신앙의 신비」에서 교황은 “최근 신학자들이 성체의 현존을 의미변화나 목적변화라는 말로 설명하려는 동향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그 개념들은 자체로 성체현존을 적합하게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고 말한다. ‘실체변화’란 개념이 계속 사용되어야 하며, 그 이유는 성체의 형상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실체변화라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 이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모든 이가 확실하게 그 현존을 받아들이고 있고, 추호의 의혹없이 확실하게 현존하시고 또 이 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의 이유 전부를 설명하며 드러내 주고 있는 바, 마땅히 그렇게 고찰되어야 하는 성사적 표지의 성격을 준 상징주의인 양 주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면, 의미변화와 목적변화설이 오늘날 신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말하지만, 최근에 나온 교황청의 공문을 보면, 아직도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성에서는 이 학설의 이론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의 사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1989년 6월 7일 신앙교리성성 장관 요세프 라칭거 추기경이 한국의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낸 공문의 일부이다.

“한국 교회 전체가 교회의 신앙을 공적으로 드높이 천명하는 계기가 될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펴낸 이 자료의 중대성에 비추어, 추기경님께서 다음에 대하여 긴급한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1988년 10월 한국교회가 펴낸 자료)의 8~9면을 살펴보면, 성체의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상치되는 성체의 ‘의미변화’와 ‘목적변화’에 관한 이론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여러 문제들에 관하여 가톨릭 교리를 보다 정확히 제시하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에서 볼 때 이 의미변화와 목적변화 이론은 아직 교회에 의하여 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전통교리인 ‘실체변화’의 이론과도 부합하지 못하는 점이 많이 있는 것으로 교회로부터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 _ 전합수 신부 (가브리엘, 수원교구북여주본당 주임)
1992년 사제수품.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체성사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수원교구 청소년국 청년성서부 초대 전담신부, 수원교구 하남, 본오동, 오전동, 송서, 매교동 본당 주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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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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