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
유구성당 조경 작업. 정필국 신부 사진제공
그렇게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 속에 성전 건축을 이어갔다. 사제관이 완공되어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새로 지어진 아름다운 사제관에서 마당과 성당, 유구를 내려다보며 잠시 회한과 아쉬움에 젖어보기도 했다. 사제관도 좋은 자재로 오래갈 수 있는 집을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발버둥을 쳤던가... 공사 감독도 현장 소장도 인부들도 치를 떨었을 것이다. 모양과 색상, 자재의 재질, 크기까지 꼬치꼬치 따지고 들며 채근하는 나를 보며 이가 갈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야 건물이 하자 없이 제대로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했다. 나만 몇 년 살고 끝날 집이 아니지 않은가~ 지진에도 끄떡없을 만큼 내구성이 좋아야 하고 외양도 아름다워야 하며 내부는 실용적이고 쾌적해야 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내 눈에,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성당 내부 아치.
공사로 인한 소음, 분진 발생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겪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간단한 선물도 돌렸다. 모두 별다른 민원이나 불만이 없었다. 다만 늘 그랬듯이 성당 앞의 택시기사 집은 늘 투덜투덜 불만을 표시하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다투며 고성이 오고 갔다... 어디서나 있는 일이려니 하며 그때그때 달래고 어르고 하며 지냈다.
내부 아치 철판 작업
그러던 중에 사제관 조경은 조경대로 꾸준히 진행했다. 대전 교구에서는 정평이 난 열심한 신자이면서 교구 안팎의 크고 작은 시설 조경을 해온 조경업체에 의뢰해 아버지와 아들이 성심을 다해 일했다. 특히 돌을 쌓고 다루는 기술,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기술이 참으로 대단했다. 저 나무들이 활착이 되고 가지를 키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얼마나 설?던지~. 나중 일이지만 그 형제님은 우리 성당 조경을 마지막 작품으로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시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지금쯤 하늘 나라 정원에서 거닐며 당신의 작품을 내려다보며 흐뭇해 하시겠지...
성당 제단부.
외벽 벽돌 메지도 흰색이나 검정색, 회색, 황토색은 영 보기 싫어서 비둘기색으로 했더니 가장 보기 좋았다. 그렇게 결정하는 데도 많은 궁리와 탐사를 거듭했다. 성당 외벽 하단에 화강석으로 기단석을 쌓는데 잠시 못 본 사이에 기단석을 두 칸 세 칸이나 올려서 창문 턱까지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또 내 눈이 뒤집혔다. 곧바로 달려가서 또 호통을 쳤다. 눈은 왜 달고 다니느냐, 저렇게 쌓으면 돌값도 돌값이지만 창문과 기단석의 비율이 안 맞지 않느냐~ 순전히 나의 눈썰미로 느껴지는 직감이었다. 난감해 하더니 하는 수 없이 벗겨내고 다시 했더니 그제야 비율이 맞고 보기가 좋았다. 자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러니 하루 종일 감시, 감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성당 조경.
성당 건축이 진행되면서 성당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종탑 모형이 오랜 시간 작업 끝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대형 크레인으로 올려보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차를 타고 다니며 높이와 모형을 요모조모 확인했다. 애시당초 종탑 사이즈를 정사각형이 아닌 비정사각으로 해놓는 바람에 종탑 모양이 제대로 나올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그런 중에도 종탑을 올려 높이를 결정했다. 돌이켜 보면 더 넓고 더 높게 할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다시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미세한 불균형이 친근감 있게 보여졌다. 마음의 위안이겠지~
종탑 모형 설치
마침내 성당 지붕 위에 동판이 덮이자 번쩍번쩍 유구를 비추었다. 창문이 아치형으로 뚫렸지만 허전했었는데 창호가 들어가니 집 같았다. 건물이라는 게 특이한 것이 맨바닥을 걸을 때와 구조가 완성되고 들어갔을 때의 공간감이 달랐다. 완성된 후의 모습이 한결 더 안정될 뿐만 아니라 공간도 더 넓게 보이는 것이다.
유구성당 전경.
그리고 드디어 동판을 씌운 종탑이 올라가자 구릿빛 선명한 동판으로 된 종탑과 성당 지붕이 빛을 뿜어내는 것이 마치 유구 지역을 환히 비추는 복음의 빛처럼 보였다. 그래, 그것이 성전 건축의 목표지~ 그리고 나서 성당 내부에 나무 기둥과 아치가 세워지고 나니 이제 그야말로 성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구성당 전경.
성당 외부 벽이 완성되자 성당 조경이 본격화되었다. 소나무를 심고 싶었던 열망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큰 소나무를 구입하려면 한 그루에 몇천만 원씩 주어야 하는데 그건 도무지 불가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성당 묘지에 우리나라 전통 소나무 고목이 밀집되어 있었기에 벌목으로 숨통도 틔우고 성당은 소나무로 운치를 더할 수 있었다. 굴취 허가를 받아 15주만 선정해서 봉분을 뜨고, 옮기는데 이건 정말 장관이었다. 걱정과 불안이 컸지만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경륜으로 능수능란하게 그 큰 소나무를 굴취하여 성당 주변에 심었다. 특별한 설계도 없었다. 그저 내 눈썰미로 이곳이 좋겠고 저곳이 어울릴 듯하여 거기 심으라고 했는데 심고 나니 묘하게 잘 어울렸다. 가능한 성당 건물과 종탑을 가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소나무 한 그루가 주는 그 운치와 맛이란 다른 어떤 나무도 대체 불가한 것이었다. 역시 나무의 왕이었다. 우리 형편에 그렇게 좋은 소나무를 20주 가까이 심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요 축복이었다. 소나무 식재로 성당 건물이 더욱 빛을 발했다. 지나가는 주민들도 놀라워하며 부러워하였다.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