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일, 사랑하는 엄마께서 99번째 생신날 새벽 3시30분경에 하늘나라를 향해 떠나셨다. 평생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분,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는 한순간도 없으셨던, 친인척들로부터 천사라 불리셨던 분, 비록 글은 모르셨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성모님을 참 많이도 닮으셨던 나의 엄마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돌아가시기 8개월 전부터 산소호흡기를 하면서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지면서, 너무너무 궁금한 것 하나가 생겼다.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어찌나 간절히 궁금했는지 저절로 나오는 신음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장례식장에는 엄마가 정말로 안 계셨다. ‘엄마는 지금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계신 것일까?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발인날이 되었다. 상실감을 넘어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도 만져 볼 수도 없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도 없는 아득한 이별이라는 생각은 너무 슬펐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눈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시지 않은 지금의 엄마한테 열심히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와의 여행이 되고 있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깃털처럼 가볍고 아주 평온한 이 마음은 뭐지?’ 하는 순간, 반짝반짝 해같이 빛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 너~무 이쁘다!”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남편 바오로가 나를 툭 치면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이쁘다니?” 하는 바람에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폰으로 라도 찍어둘걸’ 싶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폰으로 찍을 수 있었으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을 거야. 그건 엄마한테만 보인 것이고, 천국 가신 할머니를 보여 주신 거야” 한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뒤로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고 가장 행복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슬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고 가슴이 벅차올라 감사할 뿐이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내게 보여 주셨다.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간절함으로 구했던 나의 목마름에 그분께서는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이런 곳이란다” 하시며 은밀히 보여주셨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처절하게 무너진 이를 이렇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위로를 넘어 기쁨과 환희가 가득 차도록 바꿔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있다! 그분은 바로 나의 하느님, 나와 늘 함께 계시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나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으신다. 그 애틋한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있는 듯하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가신 엄마를 품에 안아 주신 그분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인간의 품에 비할 수 없는 한없이 좋은 그분의 품 안에 계시니 이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있을까? 늘 가여웠던 엄마에 대한 가슴 시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큰 위로가 되고 평안함이 되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흐르게 한다.
나는 이제 영원한 삶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을 다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가게 되는 날 ‘해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엄마와 천사들의 마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이길남 파우스티나(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