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깊은 밤, 우리는 45년만에 다시 비상계엄을 만났다. 그로부터 2시간 30분 후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했고, 6시간이 지나서 해제 발표가 이뤄졌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무장한 계엄군을 막아선 것은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이었다. 그날 이후 국회의사당 앞과 여의도 일대는 윤석열 정권의 이른바 ‘친위 쿠데타’에 항의하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리고 그 ‘촛불’은 전국으로 번져갔다.
‘내란죄’로 다뤄질 이 군사 쿠데타를 획책한 이들의 위험천만한 시도는 이미 오랫동안 계획된 것이었다. 한밤의 평화로운 일상을 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엄청난 참극이 이어졌던 1979년과 1980년 신군부 세력의 계엄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은 즉각 여의도로 모여 계엄군을 몸으로 막았다. 그에 힘입어 국회의원들은 신속하게, 하지만 위태롭게 계엄 해제를 결의, 쿠데타를 막을 헌법적 명분을 성립시켰다. 이후 시민들은 쿠데타 주범에 대한 탄핵 소추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즉각적인 참여를 촉구하며 거리를 메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촛불에만 의지할 수 없다. 촛불은 엄혹한 시대의 참담한 역사를 건너오며 스스로 장착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지만 또 다시 촛불을 켜야 하는 시간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엄은 이미 수개월 이전에 기미가 포착됐고, 시대착오적 망상으로 치부됐지만 실현됐다. 어리석은 대통령의 어설픈 시도로 빚어진 소극(笑劇)이나 소동 정도로 규정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 군 지휘 체계상의 혼란과 항명과 ‘태업’, 야당 중심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대처와 다양한 우연 등으로 비극적 사태를 가까스로 면했을 뿐이다.
주교회의가 4일 입장문을 통해 밝혔듯이,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즉각 사퇴, 혹은 탄핵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이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을 방해하는 행위는 반역이다.
천주교 사제 1466명은 비상계엄 선포를 예견하기라도 했듯 11월 28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 사제 4명 중 1명이 서명한 선언문이 탄식하며 이르듯이, “어둔 데서 꾸민 천만 가지 일들”이 속속 밝혀지고,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지경”이었다.
형식상의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우리는 이전의 독재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방심했다. 하지만 이번의 사태처럼, 그 위험천만한 시대로의 복귀가 불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마다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촛불의 힘을 믿는다. 여기에는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교회의를 비롯해 전국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수도자들,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교회내 단체들이 연이어 입장문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종종 교회가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자체검열적 소신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 안의 해묵은 정교분리의 의식은 우리가 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신앙인의 소명은, 세상을 비추라는 것이지 자신 안에 머물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일과 함께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과 공동선을 철저하게 실현해가기 위한 일상의 노력에 더 철저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독재의 여지를 온전히 봉쇄하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이번 비상계엄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