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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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성체의 현존

[월간 꿈 CUM] 교리 _ 성체성사, 그 신비 속으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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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트렌토 성 바길리오 대성당


성체 교의 역사 가운데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체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고 하겠다. 성체성사의 본래 원천은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며 이를 증언하고 있는 것은 네 복음서를 비롯한 성서이다. 이를 처음으로 전례와 생활 속에서 구현한 것은 초대교회의 삶이겠지만, 이것이 10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오류와 의혹이 생기고 갖가지 이설들이 발생하여 교회 안에 혼란을 가져왔다. 이를 총정리하여 이른바 교의상으로 체계화한 것이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체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가 첨가나 수정이 필요없는 완전무결한 성체 교의를 내놓은 것은 물론 아니다. 모든 공의회가 당 시대의 가장 어려운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되었듯이, 트리엔트 공의회도 당시 최대 난점이었던 종교 개혁론자들의 저항에 대항하여 그에 합당한 답변을 마련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 답한 것이 아니라 개혁론자들의 저항에 대항하여 합당한 답변이 필요하였던 문제에 관하여만 주로 서술하였던 것이다.

당시 성체성사 부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점은 ▲ 실체변화설의 긍정 여부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 문제 ▲ 미사의 제사성 등이었고,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성체의 현존성에 관한 문제 즉 실체변화설에 관한 문제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현존성’(presentia)에 관한 한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충분한 답을 주었다고 본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인류의 봉헌이요 희생이 된다는 ‘제사성’(sacrificium)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두 가지 점, 즉 성체 현존과 제사성에 관한 명백한 해명은 트리엔트 성체신학의 가장 큰 의의이며,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당시에 이러한 성체에 관한 제 규정들은 교회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고 수많은 영혼을 오류의 어둠으로부터 구해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성체성사에 대한 루터, 칼뱅 등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들 주장이 구구절절이 충분한 이유와 논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그러한 이단과 오류의 발생의 이면에는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교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성사의 사효성을 말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합당한 수용자의 자세와 신앙에 대하여는 소홀히 한 점 ▲ 평신도들의 능동적 신앙을 유도하기보다는 단지 교계제도를 통해 전달되는 신적 은총만을 강조한 점 ▲ 미사가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이요 봉헌이 됨을 말하면서 나눔과 일치에 대하여 소홀히 한 점 ▲ 일부 사제들에 의해 성사를 단지 기계적인 반복으로 전락시킨 점 등이 그러한 것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실체변화설’이나 칼뱅의 ‘영적능력설’이나 루터의 ‘성체병존설’ 등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축성시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현존하여 계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

즉, 전적인 성체현존이냐 아니면 영적현존이냐 아니면 성체병존이냐 하는 존재 양태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이론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하고 사랑한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큰 차이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종교 개혁론자들이 그렇게도 화체설(성체변화설)을 비난하고 성체의 완전한 현존성을 부정하고 나선 것은, 단지 성체가 완전한 그리스도의 몸이냐 아니면 상징이나 영적인 힘이냐를 떠나서 그 이면에 가톨릭 생활 전체에 대한 불신과 배척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점에 관하여는 루터와 칼뱅의 일차적 저서들을 읽으면 금방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성체를 바라보면서, 또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그리스도 계심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누어주고 떼어주는 성체의 삶 그 자체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현존의 진리를 우리가 단지 그 진리를 보존하며 감상하라고 우리에게 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이 확실한 성체가 매일 반복되어 성부께 봉헌되어지고 또 그것이 수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지고 먹혀지듯이, 그러한 생활을 우리가 보고 깨닫고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그 진리를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성.’ 이는 확실히 불변의 진리이고 거역할 수 없는 교회의 신비요 진리이다. 그러나 이를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그 ‘현존성’의 신비 자체가 아니라 그 ‘현존성’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일 것이고, 그것은 곧 봉헌과 나눔의 생활일 것이다.


* 그동안 ‘성체성사, 그 신비 속으로’를 연재해 주신 전합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_ 전합수 신부 (가브리엘, 수원교구북여주본당 주임)
1992년 사제수품.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체성사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수원교구 청소년국 청년성서부 초대 전담신부, 수원교구 하남, 본오동, 오전동, 송서, 매교동 본당 주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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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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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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