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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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신당 가서 촛불을 밝혀라

[월간 꿈 CUM] 꿈CUM 가정 _ 오늘 당신의 자녀와 안녕한가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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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12월입니다. 한 장 남은 올해의 달력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떤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난해 꼭 이맘 때였습니다. 11월 말일 자로 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자퇴 처리를 요청했지요. 고1이던 아이의 자퇴 의사가 확고해서 45일간의 학업 숙려제가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학업 숙려 기간을 갖고도 아이가 자퇴를 선택한다면 검정고시를 보게 해야 하는데, 문제는 학적부에 자퇴 처리 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 응시 접수를 할 수 있습니다.(1차 : 2월 응시 접수 후 4월 시험, 2차 : 6월 응시 접수 후 8월 시험) 자퇴 처리가 늦어져서 8월에도 검정고시를 볼 수가 없다면, 아이는 최소한의 목표도 없이 1년을 보내야 하고,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지요. 이듬해 4월에 다시 도전하더라도 일단은 경험삼아 시험이라도 한 번 보게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자퇴 처리가 되고 나니 저도 그랬지만, 아이도 많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11월, 12월 아이는 두 달 내내 찾아다니며 타로점, 사주풀이를 듣고, 집에서는 전화를 붙들고 신점 상담에 매달렸지요. 저는 신앙인이 그러면 안되지 싶어서 멀리했는데 솔직히 그보다는 제 귀가 얇고 불안이 높아서였지요.

그런데 아이를 통해 날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저도 귀가 팔랑거리는 겁니다. 무속인들은 지금까지 우리 아이의 아픔과 생활, 학교 부적응, 부모와의 갈등, 아이 성향 등을 훤히 들여다보듯 맞춰댔지요. 당시 저는 냉담이 4년째 이어지고 있어서 신앙인으로서의 경계가 무뎌져 있을 때고 속은 한없이 답답하고 불안했지요. 아이는 학교도 학원도 안 다니면서 밤낮은 바뀌고, 자정이 다 된 늦은 귀가가 이어져 보다 못한 제가 신점 상담을 찾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무속인의 말은 족집게 같은 점사라기보다 주로 저를 위한 위로의 말이었지요.

‘아직도 가슴에 바람이 꽉 찼네. 내년 가을이면 애가 뭘 하고 싶은지 말 하겠네. 스무 살 넘으면 효녀 소리 들을 애야. 돈 복은 타고 났네.’

그런데 제가 원한 건 딱, 언제부터 아이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 날 아니 그 달이라도 좀 알려주길 바랐지요. 불안에 압도당해서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30초마다 1,200원씩 뚝뚝 돈이 떨어져 나가는데 듣고 싶은 얘기가 없자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렇게 실망하면서도 무속인 찾기를 몇 번 더 하던 어느 날,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어보자’라며 신점 상담 전화를 붙들었습니다. 무속인은 저를 위로하다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엄마는 모시는 신당이 있어요? 모시는 신당이 있으면 가서 날마다 촛불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세요. 그러면 엄마 눈에도 보일 만큼 아이에게 변화가 있을겁니다.”

모시는 신당이 있냐고 묻길래 속으로 굿이라도 하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뒷말을 듣고 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지요.

‘그렇지. 나에게도 모시는 신당이 있긴 있었지.’

그제야 성당 제대 위에 밝혀진 촛불, 성모상 앞에 알록달록 불이 켜진 컵초들의 모습이 떠올랐지요.
 

노르웨이 오슬로 대성당

 


‘아! 이렇게 나를 부르시는 건가…?’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아이의 격렬한 사춘기, 말이 좋아 성장통이지 처절한 징벌과도 같았던 고통의 시간에 저는 하느님을 원망하느라 더 철저히 하느님을 외면했는데 아이의 반항과 방황만큼 저의 반항과 방황도 깊었더군요. 그 뒤 다시 성당에 가서 미사도 참례하고 매일 성모상 앞에 컵초를 사서 밝혔지요.

‘어머니 저 좀 기억해 주세요’ 하면서 어떤 날은 10개의 컵 초를 밝히고 오기도 했습니다. 마음먹고 고해성사를 받던 날, 눈물 콧물 다 쏟고 울음소리로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 소리로 힘겹게 고백을 한 뒤 행여나 신부님과 얼굴이 마주칠세라 도망치듯 고해소를 빠져나왔지요. 그렇게 ‘모시는 나의 신당(?)’을 다시 찾아 부지런히 나가고, 염원을 담아 촛불을 밝히고 9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56일간 이어지는 ‘묵주의 9일 기도’를 5번을 했더니, 거의 10달이 흘렀더군요. 5번째 9일 기도 끝에 드는 생각은 ‘혼자만의 묵주기도 대신 함께 하는 기도를 하자’ 싶어 제발로 레지오 마리애를 찾아갔답니다.

그동안 저희 가족의 아픔과 성장 이야기는 한 권의 에세이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왔고, 아이는 지난 8월에 본 검정고시 결과로 9월에 대학 수시 접수를 마쳤지요.

대학을 꼭 보내야 해서가 아니라 검정고시 점수가 아깝고 또래가 아직 고2인지라 지금 아이는 무엇이든 경험해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셈이니까요.

그리고 4년 냉담하던 제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라니요! 그렇게 처절한 고통이 이제는 고통의 ‘신비’가 되었지요. 부끄러움 없잖은 저의 사춘기 양육 경험담과 신앙 고백이 부디 여러분께 희망의 신호로 가 닿기를 빌어봅니다. 오늘도 당신의 자녀와 안녕하기를요.
 

 

 


글 _ 최진희 (안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휴(休)그림책센터 대표이며,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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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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