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11월 25일. 오전 7시50분 서울 김포국제공항.
김포발 강릉행 국내선 KAL175편이 창공을 가르려고 몸짓했다. 이륙 순간이었다. 창밖으로 활주로와 저 멀리 비행기 여러 대가 보였다. 안전띠를 맸다. 곧이어 엔진 굉음이 들렸다.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곧 이륙하려는가 보다 생각했다.
비행기를 이용한 사람은 안다. 이륙할 때 비행기는 경쾌하면서도 사뿐하게 활주로를 달리다가 지상에서 벗어나 창공에 진입한다. 이날따라 충분히 활주로를 날지 않았다는 느낌과 동시에 동체는 이미 상공을 향해 치솟았다. 순간, 기체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다가 곧바로 왼쪽으로 기울었다. 옆 사람과 어깨가 살짝 부딪쳤다. 사고라고 직감했다. 동체는 땅바닥에 닿아 충격을 받은 듯하다가 ‘다다닥’ 마찰음을 내며 수백 미터를 질풍과 같이 달리다가 곤두박질쳤다. 이내 기체가 멎는 듯하더니 화염이 비행기를 휩쌌다. 곤두박질칠 때 조종석이 있는 기수가 두 동강 나 버렸다. 쪼개진 사이로 창공이 보였다.
이를 어쩌랴. 화마가 부서진 기수 초입에 들이닥쳤다.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들렸다. 안전띠를 풀고 우왕좌왕했다. 막무가내로 탈출하려는 사람이 뒤섞여서 아비규환이었다.
이때 공항소방대가 달려와 진화 작업을 서둘렀다. 가까스로 화마의 기내진입을 막았다. 대혼란 속에 탈출이 시작되었다. 2~3분만 늦어도 기체는 폭발했다고 했다. 사고 원인은 엔진 고장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2개의 엔진 중 하나가 이상이 생겨도 비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조종사의 착오였다. 일단 상공에 진입해 항공유를 쏟아 낸 뒤 관제탑의 도움을 받아 착륙을 시도해야 했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아 빚어진 사고였다.
48명의 승객 대부분은 엉금엉금 왼쪽 비상구를 통해 탈출했다. 필자는 비상구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땅바닥에 뛰어내렸다. 다행히 잔디밭이었다. 비행기를 쳐다보니 엉망이었다. 그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한 사람이 죽었고 약간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집단 희생은 막았다.
#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경 전남 무안국제공항
35년 전, 필자가 경험한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착륙 도중 화염에 휩싸여 두 명의 승무원을 제외하고 탑승자 179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슬프도다. 불길이 기내에 들이닥쳤을 때 모습이 상상된다. 좁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희생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데자뷔 된다.
사고 원인을 두고 백가쟁명이다. 하지만 모두 사후처방이다. 유비무환이 정답이다. 방콕에서 날아와 목적지 무안국제공항에 거의 도착했다. 기쁨도 잠시 처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만 억울하다. 이들의 원혼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삼가 고인들의 평안한 안식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필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35년 전 추락 사고에서 하마터면 이승을 떠나 불귀의 객이 되었을 필자였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들 불쌍한 영혼을 구하여 주소서. 아멘.”
글 _ 정인수 아우구스티노(춘천교구 주문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