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예식장 벽 속에 봉인돼 있던 프랑스 ‘화가 선교사’의 벽화가 8일 세상에 공개됐다. 안동시 도시재생지원센터(옛 안동예식장)에서 발견된 앙드레 부통(Andre Bouton, 1914~1980) 신부의 작품이다. 2023년 대전교구 삽교본당에서 발견된 제대화에 이어 부통 신부의 작품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 조명받고 있다.
부통 신부는 붓으로 신앙을 전파한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머물며 안동교구를 중심으로 전국 성당·공소에 벽화를 그렸다.
1973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성화 중심으로 그린 기존 작품과 달리, 한국 전통혼례 모습을 담아 민속화 성격이 강하다. 당시 안동예식장을 운영한 고 류한상(베드로) 전 안동문화원장이 부통 신부로부터 받은 선물로 전해진다.
류 전 원장은 1973년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가 설립한 안동문화회관 초대 관장으로, 명맥이 끊긴 하회별신굿탈놀이 복원에 힘쓰고 있었다. 그해 성탄을 앞두고 두봉 주교가 초청한 프랑스 대사와 부통 신부 앞에서 첫 복원 공연을 선보였는데, 이때 그림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류 전 원장은 가톨릭상지대학교 부지 해결과 안동문화회관 운영 공로를 인정받아 교황청으로부터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훈장(기사 훈장)’을 받기도 했다.
안동예식장이 2018년 안동시 도시재생지원센터로 바뀐 뒤, 벽화는 구조 변경 공사로 영영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예식장 벽 속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센터가 2023년 11월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한 내시경 작업 등으로 존재를 확인, 발굴·보존 작업에 착수했다.
안동시는 벽화의 예술적 가치와 안동교구에서의 부통 신부 행적 등에 관해 본격적인 학술 연구에 나설 계획이다. 또 벽화 보존 활용 방법 연구에 이어 경상북도 등록 근대문화유산 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추진위원회는 미술·문화·종교계 전문가로 구성됐다.
부통 신부는 예루살렘을 비롯해 중동·유럽·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재 국내에는 20여 점이 남아있다. 2020년대 들어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본당과 삽교본당이 그의 작품을 복원하면서 예술적 가치가 더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