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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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새로운 해, 새로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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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희년 전통은 히브리 민족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50년마다 땅은 휴경해야 하고, 노예는 해방되어야 했다. 가톨릭 전통에서는 희년에 교황이 발표하는 주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25년마다 선포되는 희년은 은총의 해로 간주되며, 신자들이 하느님과의 관계, 사회 내 다른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창조물과의 관계를 다시 일깨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5년의 주제는 ‘희망의 순례자들’로, 현재의 어려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주제다.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시대는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수백만 명이 전쟁과 폭력, 홍수와 기근과 같은 자연재해, 또는 이주로 인한 영구적인 삶의 파괴를 겪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까? 건강과 직업 기회와 같은 개인적인 욕구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번영과 평화를 갈망한다. 번영은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근본에는 경제적 안정에 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일이 존중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고, 우리 사회의 재정적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전쟁이나 사회적 폭력이 이러한 전제를 무너뜨리면,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평화는 단순히 정치적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조화와 화합을 포함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신앙이 도움이 될까?


확실히 그렇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히브 11,1)이다. 모든 전통 사회는 신앙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재난이 닥쳤을 때 자비로운 신에게 의지하곤 했다. 그러나 신앙이 종종 미신으로 물든 경우도 많았고, 현대의 세속화는 신앙의 해방적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 측면도 함께 폐기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오늘날 위기의 시기에 패배주의와 절망감이 팽배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인간 조건에 대해 예리하게 관찰했던 칼 구스타프 융은 이를 “현대인은 자신의 영혼을 찾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융은 위기가 ‘갈림길’로 이어진다고도 했다. 이는 취약성과 상실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창의성과 혁신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위기는 우리가 이전처럼 계속할 수 없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미래는 붕괴와 재앙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전을 향한 창조적인 투쟁이 될 것인가?


오늘날 많은 국가와 제도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가톨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비전을 갖춘 지도자를 두고 있으며, 그는 ‘순례’와 ‘시노달리타스’라는 두 가지 강력한 상징으로 신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에게 순례라는 상징은 강한 감정과 더 강한 헌신을 불러일으켰다. 그 증거로 전 세계의 수많은 성지가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천로역정」, 「순례자의 길」에 이르기까지 순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둥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 성지들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희망과 의미를 전하고 있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래된 형식의 교회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그리스어 ‘시노드’(synod)는 ‘함께’라는 뜻의 syn과 ‘길’이라는 뜻의 odos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순례’와 어원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는 위계적 모임이 아니라 평등주의적 모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는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2,7)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모든 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이다. 교황이 지적했듯이, 시노드는 의회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파스카 신비에서 영감을 받아, 십자가의 길이 부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소멸하지 않는 희망을 증언할 수 있다. 이번 희년이 시노달리타스가 새로운 제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다양한 은사를 요구한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로마교회는 모든 상황에 맞는 제복 ? 제의와 사제복 ? 을 갖추었지만, 시노드 교회는 다르다. 이는 참여와 포용이 상당히 다른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민주적 문화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는 인권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주의를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가치가 교회 내에서 항상 실현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매우 적절하다.


“우리 안에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인내와 끈기로써 대화와 화해를 택하게 하소서. 이 길에서 마침내 평화가 승리하게 하소서. 아멘!”



글 _ 미론 페레이라 신부
예수회 사제로 평생을 기자 양성 등 언론활동에 힘써 왔다. 인도 하비에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라 크루아(La Croix)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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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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