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운동신경은 남달랐다. 어머니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남다른 운동신경을 눈여겨 보셨다.
그렇게 내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접한 운동은 기계체조였다. 나는 당시 안양 명학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기계체조부가 없어 수원의 한 초등학교로 통학해야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힘들지 않았다. 기계체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체조 연습을 하는 곳은 나에게 큰 놀이터였다. 재미있어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들보다 남다른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잘하다 보니 흥미를 느꼈고, 그러자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재능을 보이면서 코치님이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과 달리 코치님은 차츰 엄격해지시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성과를 잘 내지 못할 때는 매를 들기도 하셨다. 어린 나이에 폭력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맞는 날이 계속되면서 나는 기계체조에 흥미를 잃었고, 어머니에게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유망주였던 탓에 코치님이 잘못했다며 극구 만류하셨지만, 어머니는 내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 주셨다.
어머니께서 다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태권도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관장님은 키가 작은 나를 보시고 가능성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간 곳이 안양의 석수 초등학교 유도부였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3학년까지 유도를 했다. 워낙 운동신경이 좋아 유도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문제는 키와 체급이었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키와 체급에 밀려 늘 시합에 나가면 져서 돌아왔다. 작은 키는 나에게 하나의 콤플렉스였다.
그때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유도 감독님이 아무래도 유도보다는 레슬링이 더 좋겠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레슬링을 배운 지 3개월. 나는 처음 나간 전국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작은 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작은 키는 레슬링을 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큰 장점이었다.
글 _ 정지현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경기도 안양이 고향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 은메달, 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kg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