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초하루가 다가옵니다.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립니다. 차례를 올리는 것은 조상님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어떠한 재앙도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함으로써 복을 초대하는 제액초복(除厄招福)과 벽사초복(闢邪招福)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복을 내려주시는 분은 조상님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는 것은 조상님의 복을 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예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우리도 후손들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구해 줄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그들의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이르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 말씀으로 진정 복을 내리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모세나 아론이 후손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주님의 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조상님들을 위한 차례와 더불어 후손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청해 얻고자 하는 복은 어떤 복이어야 할까요?
성경에서는 한 해 동안 청해 얻고자 하는 복 중에 진정한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세속적인 가치인 건강과 돈 혹은 명예나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루카 12,36) “깨어있는”(루카 12,37), 그리고 “준비하는”(루카 12,40)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3-15)
야고보서 말씀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계획하고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한 해의 은총을 하느님께 청할 때, 우리의 계획보다는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잠언 16,9)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깨어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