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암 환자입니다. 방광을 떼어내어 소변 주머니를 달고 있는 요루장애인입니다. 제 소변 주머니 용량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여러분에게 1분 정도 양해를 구하고, 버스를 갓길에 세우고 용변을 처리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고속버스 승객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암 환자이고, 요루장애인이다. 2018년 여름 요막관 암 진단을 받았다.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암이다. 요막관은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는 탯줄의 일부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는데, 배 밖에는 배꼽이 되고, 배 안쪽에는 배꼽과 방광을 이어주는 관으로 남는데 이것이 요막관이다.
대개는 아기가 성장하면서 요막관은 퇴화하여 가죽처럼 끈으로 남아서 방광을 잡아주는 역할만 한다. 나는 그 요막관이 퇴화하지 않고 방광 내부로 연결된 관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 요막관 끝부분에 암이 발생하여 방광을 침범하고, 전립선과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방광을 제거하고 소장을 잘라서 인공 방광을 넣으려던 수술 도중 장 유착이 심각하여 결국 인공 방광 수술을 포기하고 배꼽 오른쪽에 구멍을 뚫고 소변 주머니(요루)를 몸 밖에 달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요루장애인은 장루장애인(배꼽 왼쪽에 구멍을 내어 대변 주머니를 부착한 장애인)과 더불어 외관상 장애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 약 263만 명(2020년 통계청)중에 요루·장루장애인은 약 1만 5000명 정도이다.
요루를 몸에 부착하다 보니 어려움이 여러 가지이다. 부착된 주머니가 이탈되어 소변이 새어 나와 낭패를 본 경험도 여러 번이다. 잠자리에서도 한 방향으로 누워 자야 하는 불편함이 3년을 넘겼다. 멀리 외출할 때에는 여분의 요루와 여벌 옷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 주머니가 새거나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격한 운동과 활동은 금물이다. 배에 무리한 힘을 주는 것도 안되고, 꽉 죄는 멋쟁이 옷은 나에게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선배 환우들의 조언과 요루장애인협회 카페 등을 통하여 나름 다양한 대안과 방법들을 터득하고 이제는 익숙한 요루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진료를 받으려 천안과 서울을 왕복한다. 대개 고속버스를 이용하는데, 편하기도 하거니와 고속도로 교통체증으로 승용차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이 버스전용차로 덕분에 1시간 남짓 걸리니 고속버스가 서울 나들이에는 실로 짱이다. 특별히 대형교통사고만 없다면….
그날은 코로나19 확산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가 만원이었다. 다른 날보다 고속도로 진입도 5분 정도 빠르고 길도 막히지 않고 잘 달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어플 굿뉴스를 보면서 아침기도 후에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끝내고 빛의 신비를 묵상할 즈음 버스가 서행을 하더니 급기야 멈춰 서고 말았다. 안성IC를 막 지나친 곳이었다. 차량증가로 지체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에 열중하는데 버스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하니 경부선 상행 안성휴게소 부근에 대형 트레일러가 전복되어 3개 차로를 막고 있다는 뉴스를 확인하고 요루를 만져보았다. 벌써 천안 출발 1시간이 다 되어 주머니가 많이 차고 있었다. 버스전용차로는 제일 안쪽이라 급히 내려 처리하기도 위험하고 내려서 갓길까지 이동도 쉽지 않을 것이고, 사고처리가 되더라도 서울까지 버티기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등등 별별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옆자리 여성에게 플라스틱 커피잔을 빌려서 버스 출입문 쪽에서 해결할까? 버스 기사님에게 뭐라고 먼저 부탁해야 할까?
손에 묵주를 잡고 뭔가 해결해주시리라 계속 기도하고 두드리고 청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버스는 사고지점 가까이에서 갓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 앞 유리창으로 길게 드러누운 대형 트레일러가 보였다. 부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하길 빌었다. 그리고 ‘내 요루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기를 내어 일어나서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갓길에 세워주시면 고맙겠다고….
결국, 버스 기사는 나를 갓길에 내려주고 1분 정도 기다렸다가 내가 무사히 일 처리를 마친 후 나를 태우고 출발하였다. 나는 버스 기사와 승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버스 앞쪽 디지털 시계는 10:04(천사)에서 10:05로 바뀌고 있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글 _ 김정수 (베네딕토, 천주교 대전교구 가톨릭농민회 부회장)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보다 농사를 택하여 지금까지 농촌에서 살고 있다. 2018년 요막관암 3.5기 진단받고, 수술 후 항암 4년차이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