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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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自業自得)! 흩어지지 않는 기억으로…

[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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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내 몸이 나에게 호소가 아닌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3주 정도 전부터 위가 쓰려왔는데 오늘은 참다못해 요동을 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닌 누구에게 탓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아침에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오랜 변비를 해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과 해방감에 하루, 이틀, 긴 시간의 반복이 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술이 술을 마시듯 모닝커피가 모닝커피를 마시는 패턴이 위장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준 자업자득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고통이 호통칩니다.

불교에서 ‘업’(業)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업이라하면 불교를 떠올리며 죽고 사는 삶의 반복인 윤회 혹은 환생과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굳이 윤회와 연결 짓지 않더라도 업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삶과 행동의 인과적 패턴입니다. 자기의 행위(행업)는 과거 행위(행업)의 결과이며, 그 결과는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로 돌아옵니다.

이런 인과적 패턴에 따른 업에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법염경」(正法念經)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쉽게 말해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가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이었다. 영웅의 왕관은 거의 그의 손에 들어왔으며 그는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이 악명 높은 사건이 결과적으로 안 씨의 승리로 끝나고 만 것은 아닐까?”

이 내용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재판을 지켜본 영국 기자가 쓴 기사 내용입니다. 이 기사에서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눈에 잡힙니다.

습관은 우리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몸에 밴 버릇을 말합니다. 지금의 행위가 다시 그 행위를 낳고 그 행위가 또 그 행위를 낳는 것이죠. 욕도 해본 사람이 잘하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뭔가 어색합니다. 욕이 욕을 낳듯, 강도질이 강도질을 낳고, 거짓이 거짓을 반복합니다. 자기 행위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며, 돌아온 행위는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더욱 자신을 옭아매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과적 패턴의 자업자득이 사회 안에서 관습, 고정관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자리 내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삶의 습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익숙한 사회적 습관의 업보에서 벗어난 영웅이었습니다. 잘못된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은 조건을 바꾸어 인과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일본이 강제로 맺은 조건의 굴레를 새로운 조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보인 행동은 동양평화를 위한 행업, 그리고 우리 민족을 새로운 자주 독립 국가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행업, 일본의 한 부분이 되어 사는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한 순교행위였습니다. 일본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자주독립국을 선택해 업을 바꾼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현재 모습은 영국 기자의 말처럼 ‘안중근은 승리자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잘못된 인과적 업보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

칼을 쓰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칼이며, 죽이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일본은 총과 칼로 일어서 총과 칼로 무너졌습니다. 고통은 누가 아닌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인과적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과적 업이 있다면 불의의 업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업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하느님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업은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얻고, 열리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며 구원입니다. 그 약속의 결과인 구원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우리의 행업은 그 약속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3월이 되면 3.1만세 운동을 기념합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들은 일본 신민(臣民)으로서의 인과적 고리의 악습에서 벗어나려 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특정 국가에, 잘못된 역사관에, 물질과 권력에, 특정 이데올로기에 신민(臣民)적 업보가 남아있다면 우리 안에서 다시 독립 만세를 외쳐야 합니다. 위장도 호통을 치는데 우리 정신이 호통을 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깊은 한숨 바람에 흩어지고.’(영화 「영웅」 노래 가사의 일부) 그러나 기억만큼은 흩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립 만세!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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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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