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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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작품 ‘노숙자 예수’(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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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돈을 주운 적이 있다.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 지폐가 뭉텅이로 5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고 조용했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집어들었는데, 바로 앞에 한 장이 더 떨어져 있었다. 또 주위를 살피고는 한 장을 주웠더니, 그 앞으로 한 장, 또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생각나기도 하고, 몰래 카메라인가 싶기도 하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 여하튼 아무런 문제 없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돌려줄 단서도 없이 8만 원을 주운 뒤 ‘이 돈을 어떻게 쓸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적은 금액이었으면 오히려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텐데, 길에서 주운 것치고는 꽤 큰 금액이었기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헌금을 하자!’ 고민 끝에 절반은 내가 쓰고, 절반은 봉헌해야겠다고 생각하니 한결 가벼워졌던 찰나, 하필이면 노숙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릴 역이 머지않은 늦은 시각 열차 안에는 나와 그뿐이었고,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원래 내 돈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돌아가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순간 옛날 교리 시간에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난다’는 내용인데, ‘지금이 그때인가?’ 싶었던 나는 그에게 2만 원을 주었고, 그는 놀랐는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다. 그 뒤로도 두어 번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탈 때면 그를 마주쳤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유난히 내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한 번 보고 말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같은 장소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에게 더 이상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지난 겨울, 스페인 여행 중 마드리드의 알무데나대성당에 들렀을 때다. 저 멀리 성당 입구 쪽 넓은 앞마당 벤치 위에 노숙자가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유럽의 관광지, 특히 성당 부근에는 노숙자가 더 많은 편인데 춥고 흐린 날씨라 그런지 더 안쓰러웠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조금 돌아서 갈까 생각하던 순간, 못 자국이 있는 발등을 보고서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것은 티모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내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마태오 복음 25장과 연관되어 있었다. 어디서든 어느 누구에게서든 말씀 속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지하철에서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도움에 정답이 있는지, 어떤 방법이 나은지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작품으로 인해 내 상황과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과 조금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문제를 저마다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이나 환경·인구·전쟁처럼 국내외 뉴스에서 볼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다만 현재의 나, 그리고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이나 활동 반경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좀처럼 체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문제들에서 종교와 예술의 역할이 있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인류가 해결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메시지로 경각심을 일깨우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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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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