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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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의 중고로운 평화나라] 인생 1회차 유부남의 첫 결혼식 축사

임홍택 유스토 (「90년생이 온다」 저자, 명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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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번 결혼 축사를 맡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사실 신랑 신부께서 결혼 축사를 부탁하셨지만,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꽤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본래 대중 앞에 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것을 즐기지 못할 뿐더러, 저는 이제 결혼생활을 10년 남짓 경험했을 뿐인 초보 유부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겨우 강산이 한 번쯤 바뀔만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제가 신랑과 신부님보다 결혼생활이 뭔지 잘 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여러분보다 다소 일찍 태어나고 좀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이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전적으로 ‘축하의 뜻을 전한다’는 ‘축사’의 의미에 맞춰 오늘부터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분에게 ‘일반 사회’와 ‘결혼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결혼의 세계란,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아온 ‘일반적인 사회의 법칙’과는 다소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사회’란 일정한 합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가령, 우리가 경험하는 대한민국 사회는 법치주의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합법과 불법을 나누며, 자본주의 틀 안에서 이익과 합리의 힘으로 세상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분이 오늘부터 경험하게 될 결혼의 세계는 간혹 이러한 규칙에 통하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위바위보라는 게임에는 명확한 규칙이 있습니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자기를 이기고, 보자기는 바위를 이깁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 즈음에 저의 둘째 딸과 가위바위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바위를 내고, 본인이 가위를 냈는데 자기가 이겼다고 우기더군요. “어떻게 가위가 바위를 이길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낸 가위는 ‘슈퍼 가위’이기 때문에 바위를 자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자기의 손가락으로 제 손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예 가위/바위/보가 아닌 핵폭탄을 발사하더군요. 핵폭탄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면서 말이지요.

만약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저는 “너 시방 나랑 장난하냐?”라는 말과 함께 당장 판을 뒤집어 엎고 문을 박차고 집을 뛰쳐나갔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의 세상’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위해 좀더 노력했고, 내가 상대보다 조금 더 돈을 많이 벌며, 내가 더 일찍 일어났으며, 쓰레기를 한 번 더 치운 것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상대방에게 숫자를 똑같이 맞춘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결혼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이를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며,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결혼 세상의 셈법은 ‘세상의 셈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으로 움직이며 승자와 패자가 명확한 게임의 사회, 지친 마음에 약자들에게 작은 눈길을 주지 못하고 더 높은 세상을 향해달음질하는 차가운 세상, 경쟁과 냉소가 따스함을 압도하면서 혼자서 끝없이 외줄 타기를 이어가야 하는 삶.

신랑 ○○○군과 신부 ○○○양, 앞서 말한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사랑이라는 단어가 통용되는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는 저도 사랑의 마음을 담아 처제와 동서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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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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