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2840명을….” 어느 남루한 유대인의 입에서 2,840명의 이름이 하나씩 불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수용소에서 학살됐지만, 기록이 불태워져 신원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목소리로 죽은 이들을 호명하는 이 유대인은 어떻게 그 많은 이름을 기억하는 걸까요.
우크라이나 출신의 ‘바딤 피얼먼 감독’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언어가 어떻게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는지’를 묵상하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2차대전 말미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 ‘질’은 살아남기 위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수용소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길 원하는 ‘코흐’라는 독일군 장교가 있었지요. 페르시아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모르는 질은 코흐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게 됩니다. 그날부터 질은 엉터리 언어를 만들어가며 목숨을 건 ‘페르시아어 수업’을 이어갑니다.
“두려워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수용소에서 죽음은 일상처럼 닥쳐옵니다. 코흐의 배려로 수용자들의 명단 작성작업을 맡은 질은 자신을 비롯한 갇힌 이들의 이름에 담긴 절망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광기의 시대, 당장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의 호칭이었죠.
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가슴에 새기며 그들의 이름으로 가짜 페르시아어를 지어냅니다. 그렇게 노동, 배고픔, 인내, 희망 같은 말들이 수없이 생겨납니다. 홀로코스트의 지옥에서 쓰러져가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수천 개의 새로운 단어들로 탄생한 것이지요. 관객은 질이 꾸며낸 말들로부터 진짜 못지않은 진솔함을 발견합니다. 처참한 슬픔으로 얼룩진 어원(語源)…. 그 이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질이 2840명의 희생자들을 낱낱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만 조각의 언어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또 듣습니다. 그 가운데 과연 몇 마디나 진심 어린 공감을 담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우리의 말들이 덧없이 허공을 오가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때론 증오하게까지 만드는지 생각하면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배운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이지요. 그런 우리들의 언어가 어떤 빛깔, 어떤 무게여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