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귀를 얼리는데 길가 빌라 기둥 옆에서 전화를 받는 자매를 보고 있다.
갑자기 “영분아! 정신 차려! 누구든지 한 번은 겪게 돼 있어. 연령회에 연락을 해놓을 테니 형제님이 운명하시면 전화해. 내가 갈게!”
휴대전화 저편에서 겁에 질린 율리아나 씨의 목소리가 울먹거렸고 통화를 하면서도 루치아 씨는 울고 있었다. 내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같이 울고 위로해 주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행복한 신앙의 동행들이 아닌가! 우리는 인자하신 어머니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고 이들은 한 동네에 30여 년을 살면서 신앙 안에서 신뢰와 우정을 쌓아온 절친들이다.
결국 그날 저녁에 율리아나 씨의 형제님(대세를 미리 받으셨다)은 안타깝게 운명하셨고 성당에는 연도 공지가 떴다. 나는 갑자기 토사곽란이 나서 자정에 응급실에 갔고 3일을 꼼짝 못 하다가 삼우제 날에 기를 쓰고 미사를 봉헌하러 가서 율리아나 씨를 만나 때늦은 위로를 했다.
그다음 주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출석한 율리아나 씨는 핼쑥하지만, 밝은 얼굴로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 내가 식사를 끝내고 “율리아나 씨 대단하세요. 나 같으면 못 일어났을 텐데”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두 손으로 15명 정도 되는 자매들을 가리키며 “모두들 도와주신 덕분에”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다. 율리아나 씨는 형제님을 떠나보낸 그 힘든 상황을 세속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교우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쏟아지는 햇빛 속을 걸으며 ‘나도 그런 동행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한 자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나도 어려울 때마다 기도해 주는 영적인 동행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주님은 공평하십니다” 고백이 절로 나온다. 따뜻해지는 등에 기운을 얻으며 행복한 걸음으로, 다음엔 만나면 즐겁게 얼굴을 마주하고 그 자매의 긴 하소연을 들어주리라 다짐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네. 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 하사. 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
글 _ 조선자 아나스타시아(서울대교구 면목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