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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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대한국민 어른 문형배

조승현 베드로 신부(CPBC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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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이후였다. 유다와 베드로는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달은 후 처신은 달랐다. 유다는 자살했고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께 돌아갔다.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이들로 온 예루살렘이 들끓었던 그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교회 성인으로 기억되고 누구는 배신자로 기억되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그랬나. 하느님의 목소리를 따라간 이들은 결국 저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계엄이 만든 밤이 깊어가던 그때도 그랬다. 양심의 소리를 따라간 이들은 밤하늘의 별이었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당론을 뒤로하고 본회의장으로 달려온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빛났다. 비례 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장애인-여성’의 이미지 소비에 머물지 않고 소신대로 투표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빛났다. 비상계엄으로 모두가 혼돈에 빠져있을 때 우원식 국회의장의 흔들리지 않는 모습도 든든했다. 무장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쳐들어오던 날, 국회 담장을 넘던 모습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계엄군에게 ‘수거’될 뻔한 사제와 수도자들의 굽히지 않는 용기도 빛났다. “정의에 중립은 없다”고 말한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한 교회 어른들의 목소리는 1987년에도 그랬듯이 교회와 세상에 나침판이 되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데 이용한 어느 성직자와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하고 성당 문을 열어 쉴 곳을 제공한 수도자들도 아름다웠다. ‘역시 천주교’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다. 종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시민들은 시대의 별이 되어 준 이들이 밝히는 등불을 보고 더듬거리며 역사의 길을 걸어갔다.

무엇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발견은 값지다. 시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법조인으로 산 그는 4억 원이 조금 안 되는 재산을 모았다. 당시 헌법재판관 평균 재산이 20억 원이었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결혼하면서 한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시민들 평균 재산을 조금 넘어선 것 같아 반성한다”고 했다. 그의 올곧음이 이번 헌재 판결문 낭독에도 묻어있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의 말은 힘이 있었다.

문 재판관의 뒤에는 그를 지켜봐 준 어른이 있었다. 경남 진주지역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문 재판관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느냐고 문 재판관이 묻자, 김 선생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했다. 이 말은 문 재판관에게 삶의 나침판이 되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어 ‘영감’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어도 문 재판관은 김 선생의 말을 잊지 않았다. 허투루 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법조계 내에서 올곧음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른을 만난 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최근 우리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 책임 있는 자리를 맡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았다.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시대. 그러기에 김수환 추기경처럼 어른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대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력으로 지혜를 전하는 어른. ‘내로남불’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어른. 자유를 바탕으로 평등을 추구하여 차별을 없애고 사랑으로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어른. 지금 우리 시대에는 어른이 필요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문으로 곧 조기 대선이 열린다. 이번 대선에서는 꼰대가 아닌 어른다운 어른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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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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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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