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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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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 땅에 파견돼 경북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농민들과 희로애락을 나누고 소박한 삶을 함께하며 70여 년 사목 활동에 매진해온 참 목자가 주님 품에 안겼다.


초대 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杜峰·프랑스명 Ren? Dupont) 주교가 4월 10일 오후 7시 47분 선종했다. 향년 96세. 고인은 지난 6일 뇌경색 증상을 보여 경북 안동의 병원에서 시술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4월 14일 오전 11시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다. 장지는 안동교구 농은수련원 성직자묘지(경북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1929년 9월 2일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3남2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두봉 주교는 21세의 나이에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했다.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1953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1954년 12월 한국에 입국했다. 대전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1955~1967년 대전교구에서 사목했으며 1969년 7월 25일 주교품을 받았다. 1969~1990년 초대 안동교구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 12월 퇴임했다. 지난 2019년 12월에는 특별귀화자로 선정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


두봉 주교는 9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경북 의성군의 공소에서 지역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주례하고 고해성사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안동교구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해 지역 신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신자들에게 항상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목자였다.


또 두봉 주교는 가난한 교회를 표방하며 항상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고 사목활동을 펼쳐왔다. 안동교구장 재임 시절인 1973년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다미안 의원’이 경북 영주시에 개원했으며,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가 1978년 창립되기도 했다. 또 재임 시절 상지여자실업고등전문학교(현재의 가톨릭상지대학교), 안동 문화회관을 설립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교육·문화 사업에도 매진했다.


농민사목에 특히 노력을 기울여온 두봉 주교는 지난 1979년 농민들에게 불량 감자종자를 배급한 군청 측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오원춘 분회장을 폭행하는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나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전국적인 기도회를 열었다. 농민의 앞에 서서 불의에 항거했던 두봉 주교는 이 일로 인해 당시 유신정권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는 등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사회 정의를 위한 사목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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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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