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프랑스 태생인 두봉 주교가 한국에 온 건 6·25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그 후 71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국 교회를 행복과 사랑으로 안내했다.
그는 좌우명 ‘기쁘고 떳떳하게’를 평생 실천한 착한 목자였다. 농촌이라는 사목지 특성을 고려해 농촌사목부를 설립해 어려운 농민들과 함께했고, 상지여자실업전문학교(현 가톨릭상지대학교)를 개교해 여성교육에 매진했으며, 나환자를 위한 병원을 설립해 그들을 치료했다.
두봉 주교를 부르는 말은 ‘나병 환자들의 아버지’ ‘장애우들의 진정한 친구’ ‘농민들과 함께했던 하늘의 종’ ‘여성교육에 매진했던 진정한 교육자’ 등 다양하다. 그렇게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자 아버지로 헌신했다. 많은 이가 힘들고 지칠 때면 달려갔고 언제나 두 팔 벌려 환하게 맞았다.
두봉 주교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더 오래 살고 이 땅을 사랑한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두봉(杜峰)’이란 이름은 프랑스 성(姓) 뒤퐁(Dupon)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었다.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란 뜻이다.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주교는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전국을 누볐다. 두봉 주교는 안동 주민이었고 안동교구, 나아가 한국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만나는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았다.
두봉 주교는 몇 년 전 “사제로 산 70년 동안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길 때 하느님께 칭찬받을 일은 ‘사제가 된 것’”이라며 사제의 삶을 감사했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였다. 우리도 착한 목자 두봉 주교를 만났음에 감사한다. 그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