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가 너희와 함께.”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부활의 축복을 보내드립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에서 당신에 관해 기록된 말씀들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고, 성찬례를 통해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부활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루카 24,36-48; 요한 20,19-23 참조)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상처로도 참된 평화가 도래하지 못한 세상 곳곳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전쟁과 지진 및 산불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 끝없이 이어지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하는 이주민들이 평화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우리 교회는 그들을 치유하는 평화의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빛은 결코 어둠 속에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옛말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권력도 십 년을 못 가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꼭 권력이나 꽃에만 국한된 말이 아닙니다. 우리네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대원칙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또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사자성어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좋은 일이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한 번뿐인 삶의 여정이 단순히 인간적인 어떤 영달만을 바라는 삶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
최근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파면되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엄청난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비록 2025년 4월 4일의 이 사건은 그날 이후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지나가겠지만, 그것이 주는 성찰은 영원히 유효할 것입니다. 지난 123일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이들이 서로 갈라져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가운데 극심하게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는 결코 ‘당연한 것’도,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모두의 각성과 참여, 분열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결실’입니다.
다행히도 성숙한 시민들의 저항과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국가 위기 상황을 조금은 벗어난 듯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세상의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서로를 보살피며 민주주의를 가꾸어 간다면, 분명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만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의 닻을 끌고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언제나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진정한 평화의 외침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오늘도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제안하시는 ‘평화의 장인’으로서, 인간적인 세상이 주는 적대감과 혐오, 폭력이 아닌, 경청과 사랑, 연대의 문화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교 공동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이 위기를 넘어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우리가 두려움과 혐오를 넘어 사랑과 희망을 선택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참으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의 욕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부수시며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분열과 죽음이 아닌 존중과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 은총을 널리 전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기쁨에 넘쳐 지내는 일상의 삶은, 죽음의 문화, 힘의 논리를 버리고 친교와 참여, 사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이 머무는 삶의 자리에서부터 참된 평화를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2025년 부활절에
천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