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겸 세계 평화의 날 미사에서 십자가에 기대어 기도하고 있다. OSV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부터 2025년 선종 때까지 12년간 교황직을 수행했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교황이면서 남미 출신의 첫 교황,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라는 발자취를 남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복음화를 위해 교황청의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난민·이주민·어린이·여성·노인·성 소수자’들의 교황이기도 했던 그는 계급과 집단을 구분 짓지 않는 모든 이의 교황이면서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불리길 원했다.
재임 기간 12년 1개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돼 2025년 4월 21일 선종했다. 교황의 재임 기간은 12년 1개월 8일이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재임 기간(2005년 4월 19일~2013년 2월 28일, 8년 10개월)보다는 길었지만, 27년간 교황직을 수행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78년 10월 16일~2005년 4월 2일)보다는 짧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9월 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라하 페무다 청소년센터에 모인 젊은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OSV
47차례 68개국 해외 사목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사목 방문지는 로마를 벗어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이었다. 교황은 2013년 7월 람페두사 섬을 찾아 난민에 대한 형제적 사랑을 강조했다. 첫 사목 방문지로 람페두사섬을 찾은 것은 유럽사회에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120㎞가량 떨어진 람페두사섬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주요 밀항지로, 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해마다 수백 명의 난민이 배를 타고 섬으로 오는 도중 물에 빠져 숨지는 곳이기도 하다. 교황은 25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난민이 숨진 람페두사섬 앞바다에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 뒤 꽃다발을 바다로 던졌다.
교황은 2024년 9월 아시아·오세아니아의 4개국 인도네시아·파푸아뉴기니·동티모르·싱가포르를 방문해 아시아 변두리에서 형제애·평화·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고향을 떠난 이주민과 난민을, 싱가포르에서는 젊은이들과 종교 간 만남 등을 가졌다. 이 사목 방문은 재임 기간 중 가장 긴 12일의 대장정으로 기록됐다.
교황의 마지막 사목 방문지는 프랑스 코르시카섬이다. 2024년 12월 15일 하루 일정으로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사도 10,38)를 주제로 코르시카섬을 찾았다. 교황은 아작시오교구 주최로 열린 ‘지중해 지역의 대중 신심에 관한 회의’ 폐막식에 참석, 신앙과 세속 문화 간 가교로서 대중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직 교황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었다.
교황은 12년 동안 47차례에 걸쳐 68개국을 사목 방문하며, 전 세계에 포용과 연민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과 권고.
교황 회칙 4편·권고 7편·교서 11편 발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위 기간 발표한 회칙은 「신앙의 빛」(2013), 「찬미받으소서」(2015), 「모든 형제들」(2020)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2024) 등 4편에 이른다. 교황 권고는 7편, 교황 교서는 11편을 발표했다.
교황의 마지막 회칙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이다. 이 회칙에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찰하고, 신앙이 주는 위로와 봉사의 기쁨, 선교 열정을 재발견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황 권고는 2013년 발표한 「복음의 기쁨」부터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2023년)까지 총 7편이다. 「복음의 기쁨」은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하여’ 성직자·봉헌 생활자와 평신도에게 보내는 권고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가 되자고 강조했다. 「복음의 기쁨」은 교황이 2013년 11월 24일 ‘신앙의 해’ 폐막 미사 이후 36명의 신자에게 건넨 권고가 담겼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함께 쓴 회칙 「신앙의 빛」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공식 문헌인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시성 942명·시복 1174명? 역사상 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1174명을 시복하고, 942명을 시성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시복과 시성을 기록했다. 특히 2013년 5월 12일 첫 시성식에서 오트란토의 순교자 813명을 한꺼번에 시성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45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482명을 시성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성한 성인의 다수는 이탈리아 출신이며, 브라질(31명)·스페인(13명)·프랑스(7명)가 뒤를 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상 속의 거룩함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문화와 시대의 인물들을 성인으로 선포한 게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마더 데레사 수녀,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 순교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비롯해 요한 23세·요한 바오로 2세·바오로 6세 교황을 시성했다.
교황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 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명의 동료 순교자들, 총 124위 한국 순교자를 시복했다. 124위 한국 순교자들은 조선 후기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들로, 교황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시복식을 집전했다. 교황이 시성한 한국인은 없다. 올해 4월 27일에는 ‘하느님의 인플루언서’ 밀레니얼 세대의 첫 성인 카를로 아쿠티스를 시성할 예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7월 8일 바티칸에서 난민을 위한 미사를 주례하고, 난민 여성과 어린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CNS
선교·복음화를 위한 교황청 구조 개혁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앙집중화와 관료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 교황청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2022년 3월 19일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Praedicate evangelium)를 반포하고, 교황청 부서를 선교 사명 수행 체제로 재편했다.
교황청은 기존 9개 성과 3개 부서, 5개 평의회가 모두 16개 부로 전면 개편됐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반포한 교황령 「착한 목자」(Pastor bonus)를 통해 교황청 구조가 바뀐 이후 30여 년 만의 대대적인 변화다. 세례를 받은 평신도가 부서의 최고 책임자에 오르는 길을 열어 평신도 위상을 강화했다. 상위 기구 성격이 강했던 성(Congregation, 省)과 하위 개념의 평의회(Council)를 모두 부서(Dicasteries)로 통일했다. 새로 재편된 16개 부서는 법적으로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난민·이주민·어린이·노인’들의 교황
소박하고 소탈하면서 파격적인 교황의 행보에는 늘 이주민과 난민·재소자를 비롯해 어린이와 노인·성 소수자들이 함께했다. 사회의 그늘진 곳과 변두리에 있는 이들을 품은 것. 교황의 언어는 ‘환대와 포용, 연대와 자비’로 귀결돼 사회로 선포됐다. 이에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제정했다. 또 한 어린이의 제안을 듣고 ‘세계 어린이의 날’을 제정했으며,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도 제정했다. 교황은 그렇게 모두를 한 가족으로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