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류 전체가 주님 뜻에 따라 서로 사랑하길 그토록 원했던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상 순례를 마감하고 하느님 품에 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현지시각 21일 오전 7시 35분(한국시각 오후 2시 35분)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선종했다. 향년 88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려 퍼졌다. 교황의 사인은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이었다.
교황은 바로 전날인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만 해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로마와 온 세상에(Urbi et Orbi)’ 전하는 사도좌 부활 축복 메시지를 전하고, 광장에 내려와 전용 차량을 타고 5만여 명의 신자들을 사이사이를 다니며 한참이나 인사를 나눈 터였다. 지난 2~3월 38일간의 장기 입원 끝에 병환에 차도가 있을 것으로 여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교황의 선종은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교황은 병환이 가시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라며 신자들과 주님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떠났다. 이 인사말은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가 됐다.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다. 교황은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 교황에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 출신 교황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은 당시에도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하고 가톨릭의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데 헌신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자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이며 ‘평화의 사도’로 지구촌 인류를 넓은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서 보편 교회 형제 주교단을 비롯해 모든 하느님 백성과 사랑으로 소통했다. 교황은 12년 1개월 8일의 재임 동안 47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비롯한 68개국을 사목 방문했으며, 선종 직전까지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끝까지 전한 마지막 메시지 또한 ‘평화’였다. 교황은 20일 사도좌 부활 축복 메시지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무력 충돌과 종교 갈등, 정치·사회적 갈등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평화를 되찾기 위한 모두의 노력을 거듭 당부했다. 교황은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다시금 되새기자”며 “거룩한 주님의 무덤, 즉 부활의 교회에서 나온 평화의 빛이 모든 성지와 전 세계에 퍼지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교황은 생전 작성해둔 영적 유언(Spiritual Testament)을 통해 소박한 장례를 치러주길 요청했다. 아울러 바티칸 지하 무덤에 안장된 전임 교황들과 달리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해달라고 밝혔다. 교황은 자신의 무덤 역시 화려한 장식 없이 라틴어로 ‘프란치스코’(Franciscus)를 새긴 비문만 세워달라고 전했다.
한국 주교회의는 22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이날 오후부터 주한 교황대사관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공식 분향소를 마련키로 하고, 교황을 위한 국내 신자들의 조문을 시작했다. 아울러 신자들에게는 교황을 위한 9일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했다.
교황의 장례 미사 조문단은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주교회의 홍보국장 임민균 신부로 꾸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보편 교회는 이날부터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상태가 됐다. 22일 현재까지 공식 장례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이 선종 시 최대 9일간의 공식 애도 기간을 지내며 추모한다.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conclave)’는 사도좌 공석 이후 15~20일 이내에 투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단을 소집해 교회 전통에 따라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개최한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