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한국 교회의 전국 교구 신자들은 깊은 애도의 물결을 이어갔다. 각 교구는 교황 공식 분향소를 주교좌성당과 교구청에 설치하고 교황을 추모했다. 각 교구 주교와 사제·신자들은 교황 영정 앞에서 조문하고, 추모미사에 참여하며 교황의 생전 모습을 다시 새겼다. 각계 인사는 물론, 비신자와 타종교 신자 등 많은 이가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교황을 추모하는 목소리에는 사랑으로 함께한 추억과 일화, 그가 실천해온 삶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 담겨있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와 교구 구요비·이경상 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4월 24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미사를 거행했다. 1898년 명동대성당 준공 후 11번째로 봉헌된 교황 추모미사다. 미사는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와 구요비·이경상 주교가 공동 집전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께선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길을 몸소 보여주셨다”며 “사제들에게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당부하시며 교회를 야전병원처럼 모든 이에게 열린 자비와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셨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특히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오는 기쁨을 강조하셨다”며 “난민과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창조질서를 보호하는 데 힘쓸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말했다.
가스파리 대주교는 추도사를 통해 “지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고 인류 공동의 집을 지키고 존중하셨으며, 세계 변방을 우선으로 찾아다니며 화해를 촉구하셨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세계는 ‘백성들의 교황’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는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 대주교도 함께했다. 또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대사·호르헤 엔리케 발레이로 에르난데스 코스타리카대사·한홍순(토마스)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비롯해 성직자·수도자·평신도 등 2400여 명이 참여했다.
미사 중 가톨릭평화방송(cpbc)이 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를 담은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교황의 영적 유언이 한국어로 낭독되자 신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어머니와 미사에 참여한 이진성(라파엘, 초3, 서울 잠원동본당)군은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시는 교황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앞서 염수정 추기경을 포함한 교구 주교단은 4월 22일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선 아시아 첫 사목 방문지로 한국을 택하시고 우리 고통에 함께하시며 위로와 격려해주셨다”며 “당신이 맡은 사명을 충실히 사신 교황과 좋으신 목자를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세훈(스테파노) 서울시장도 방문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김동연·김경수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와 안철수(하상 바오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등이 찾았다. 조그라포스 대주교와 박인준 천도교 교령·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장 진경 스님 등 이웃종교 지도자들도 조문했다.
대구대교구는 23일 주교좌 계산대성당과 24일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했다.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강론에서 지난해 9월 교황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어떻게 하면 주교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물음에 교황님의 대답은 ‘잘 먹고 잘 자고 기쁘게 살면 된다’였다”면서 “교황님은 교황청이 아닌 공동 사제관에 머무셨는데, 식사 때 뵈면 ‘인사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식사하라’고 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5일 교구청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는 24~26일 교구청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25일 추모미사 강론에서 2014년 교황 방한 때 주교회의에서 교황을 알현한 일화를 언급하며 “교황님은 재치 있는 유머로 인사하셨고 따뜻한 할아버지 같았다”며 “교황님께서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기에 남은 우리가 그 모범을 따라 살아가야 할 책무가 생겼다”고 말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가 25일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춘천교구 홍보실 제공
춘천교구의 한 어린이 신자가 25일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교황의 영정 앞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 춘천교구 홍보실 제공
춘천교구는 25일 죽림동주교좌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했다. 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강론에서 “한국 주교단에게도 작금의 세상에서 우리 교회가 직시해야 할 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희망을 주신 분이셨다”며 “교황님은 내 자신에게 끊임없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같이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일구는 법을 삶을 통해 알려주셨다”고 전했다.
수원교구가 26일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수원교구도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총대리 문희종 주교 주례로 ‘수원교구 사제단 공동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문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우리 모두 함께 지켜나가자”며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고통받는 이들, 삶에 지친 이들과 늘 함께했던 교황의 모습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24일 원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에서 교구민에게 교황의 삶과 신앙을 토대로 강론하고 있다. 원주교구 제공
원주교구는 24일 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거행했다. 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교황님은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는 분이셨으며 약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강력하게 약자의 편에 서신 분”이라며 “약자들의 변호인이 되고 싶어 하신 이 시대의 교황님이셨다”고 추모했다.
마산교구장 이성효 주교는 23일 주례한 교황 추모미사에서 “교황님은 평소 유머를 좋아하시고 즐기시는 분이었다”며 “지난해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때 ‘몽골에 천 명의 신자가 생겼다’고 하니 ‘몽골 주교님이 세례를 많이 줘 팔이 아프겠다’고 농담하시기도 하셨다”고 추억했다.
24일 주한 교황대사관을 찾은 조문객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공식 분향소가 마련된 주한 교황대사관 경당 제대에 작은 프란치스코 사진이 놓여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분향소가 설치된 주한 교황대사관에도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4월 24일 오전까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20명이 넘는 주한 대사들과 정·재계 인사들이 대사관을 찾아 추모했다. 수도자·평신도 등 일반 시민들의 추모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대사관은 교황의 유언에 따라, 복도 한편에 작은 영정 사진과 방명록·국화꽃만 비치한 단출한 분향소를 마련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8대 후손 윤재석(지충 바오로)씨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다”며 “동네 할아버지 같이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