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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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느님과의 담판, 은총의 시작(조남대 미카엘, 수필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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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부산 근무 중이던 1998년 남천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꽃다발을 전해주며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서울로 돌아온 후 우리 집에서 성당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매주 주일이면 아내를 성당까지 태워다주고, 미사 시간 동안 집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데리러 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단 한 번도 성당에 가자고 권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스스로 걸어들어오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인근에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2000세대가 넘는 대단지였다. ‘저곳으로 이사하게 된다면 성당까지도 금방인데?.’ 문득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살던 빌라보다 두 배 넘게 비싼 집이 아닌가. 현실적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본 문구 하나가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쳤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몸이었지만, 마음 깊이 하느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하느님, 저 아파트로 이사하게 해주신다면 꼭 성당에 나가겠습니다.’ 당돌하게도 하느님과 조건부 담판을 벌인 셈이다.

아파트가 한층 한층 올라갈수록 나의 기도도 점점 간절해졌다. 은행 융자를 받고 지인에게 손을 벌리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이자를 감당할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추진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결국 꿈 같은 입주권을 손에 넣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의 손길이 나를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사 중인 아파트 주변을 돌며 우리 집이 어디쯤인지 확인하곤 했다. 입주 날이 다가오자 마치 언약의 땅에 들어서는 듯한 기쁨이 밀려왔다. 새 아파트는 성당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그제야 알았다. 하느님께서 나와의 담판에 응답하셨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분의 품으로 이끄셨음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성당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례를 받았다.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아파트, 그 기쁨도 컸지만, 하느님과 만남이 더 깊은 울림이었다. 교리를 받을 때 친절하게 인도해주신 분이 대부가 되었고, 세례 직후에는 그분의 권유로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했다. “주일 미사만으로는 신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라는 그 말처럼 매주 모임에 빠지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 나섰다. 신앙의 불꽃이 점점 커지자 신부님은 구역장을 맡기셨다. 매달 신자들의 가정을 돌며 구역모임을 주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 구역을 아우르는 지역장까지 맡게 되었다. 한때는 오십여 명의 신자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구역 미사도 봉헌했으니 성당 활동이 제법 왕성한 신자였다.

사람들은 종종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하느님은 단 한순간도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신 적이 없으며, 우리가 준비되는 순간까지 묵묵히 기다리셨다는 것을.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라는 말씀처럼 내가 두드린 문은 결국 열렸다. 그 문 너머에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가득했고, 나의 믿음도 그곳에서 싹을 틔웠다.

조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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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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