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와 사회가 산다
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성가정대학(노인대학) 어르신들이 배정국 관장의 구호에 맞춰 발차기를 하고 있다. 시니어에 접어든 배 관장은 2년 전 본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교회는 그보다 앞서 이미 ‘초고령교회’에 들어섰다. 최근 발표된 2024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신자는 27.5, 50세 이상은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이러한 교회 안팎의 고령화 통계는 흔히 위기의 지표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위기로만 진단한다면 놓치는 부분이 있다. 은퇴 전후 시니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와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 성경을 펼치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주저 없이 달려가는 신앙 선배들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7월 25일)을 제정하면서 이들의 존재 가치를 명확히 했다. 교황은 “노인 사목과 돌봄은 어떠한 공동체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우선 과제”라며 “대대로 내려온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할 뿐 아니라 조부모로부터 힘을 얻은 젊은이들이 앞으로 나아가 예언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교황은 노인을 단지 교회의 ‘이용자’가 아니라 여정의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노인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요청이 아니다. 세대를 이끌어온 이들이 다시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자는 외침이다.
기록적인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따라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산적해 있지만, 노인은 당장 살아야 할 실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시니어를 위한 대학 ‘위례 인생학교’를 설립한 백만기(스테파노) 초대 교장은 “예전과 달리 건강한 시니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노인이 살아야 사회가 살 수 있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노인이 숨고 사라지는 공동체는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회 곳곳에서는 ‘인생학교’와 같은 돌봄과 연대의 방식으로 어르신들이 다시 삶의 중심에 서고 있으며, 교회 역시 ‘시니어 아카데미’를 필두로 노인 사목의 구조를 점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사회보다 먼저 초고령화를 경험한 교회는 ‘영’ 시니어가 ‘올드’ 시니어를 돌봐주는 동시에 함께 살아나고, ‘올드’ 시니어는 손주 같은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손수 만든 선물을 건네주는 등 세대 간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30년 넘게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시니어에 접어들면서 70·80대 본당 어르신들을 위해 2년 전 재능기부를 시작한 배정국(대건 안드레아) 관장은 “생기를 되찾는 신앙 선배들을 보면서 오히려 인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라며 “가족으로 여기고 평생 함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세대는 다르지만, 공동체는 하나다. 숫자로 위기만을 말하기보다 삶으로 가능성을 보여줄 때다. 건전한 경험을 나누는 사회의 어른들과 신앙 안에 모인 교회 공동체는 ‘동행’으로 초고령 시대의 따뜻한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본지가 창간 37주년을 맞아 그들의 삶을 만났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