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뤄지는 거룩한 여정 콘클라베기도→성가→선서→투표→연기
사도좌 공석 상태에서 새 교황을 뽑는 과정인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이 임하는 투표이면서 동시에 가톨릭교회가 정한 전례 안에 이뤄지는 거룩한 예식이다.
흔히 콘클라베 개최 때마다 ‘다음 교황은 누굴까?’에 초점이 맞춰진다. 전 세계 신자들은 이 시기 광장을 찾아 국기를 흔들며 자국 추기경을 연호하기도 하고, 언론들도 ‘유력한 교황 후보’라는 타이틀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콘클라베는 베드로의 후계자, 즉 사도들의 으뜸을 투표라는 형식으로 뽑아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주님 사랑과 평화의 당위성을 전할 인물을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선발해주시도록 청하는 영적인 여정이다. 추기경들은 세계 지역 교회에서 ‘뽑힌 이들 가운데 뽑힌’ 이들이다.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의 기도를 통해 빛나는 흰 수단 뒤에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질 이를 공동으로 선정하는 과정인 것이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80세 미만 추기경들은 모두 ‘예비 교황’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세계 70개국 133명의 추기경이 작은 시스티나 경당에 빽빽이 자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장례를 치른 뒤 10여 차례에 이르는 추기경단 회의에 임한 추기경들에겐 인간적으로 콘클라베 여정이 그리 녹록한 일정은 아니다. 바티칸에 진을 친 취재진이 광장을 지나는 추기경이 보이면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은 콘클라베 직전마다 펼쳐지는 풍경이다.
5월 7일부터 추기경 133명이 새 교황을 뽑고 있다. 120명 제한을 둔 교회법을 넘겨 추기경으로서 지닌 권리와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 결과다. 미국의 한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같은 동료 추기경이지만 서로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기에 회의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스티나 경당에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앉아 베드로의 후계자를 내 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일은 엄청난 무게를 주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추기경들의 고뇌는 어느 때보다 깊었던 것 같다. 콘클라베 전 12차례 추기경단 회의에서는 다양한 주제 논의가 전개됐다. 현재 지구촌 인류가 처한 최대 이슈들인 전쟁, 가난, 이민자, 환경, 빈부 격차, 양극화 등 거의 모든 주제가 거론됐고, 추기경들이 살폈다. 어쩌면 모두 선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고 남긴 그야말로 ‘확대된 사도좌의 역할’에 관해 추기경단이 서로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며 시노드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인류가 처한 위기, 보편 교회와 교황청 앞에 산적한 과제를 타개하기 위한 추기경단의 깊은 고심이자, 모색이다.
5월 7일 저녁 추기경단은 ‘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성가를 노래하며 시스티나 경당에 입장했다. 파올리나 경당에서 이미 한참이나 기도에 임한 추기경들은 성령께서 가장 적합한 이를 세워주시길 청한다. 이윽고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된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의 대표 선서가 라틴어로 선포됐다.
요약하면 투표와 관련한 비밀을 엄수하고, 앞으로 교황의 영적, 세속적 권리와 자유를 힘껏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맹세하겠다는 내용이다. 어떠한 외부 간섭과 개입에 대해서도 따르지 않겠다고 선서한다.
추기경단은 정식 투표가 이뤄지기 전 개별 선서에 임한다. 경당 중앙에 놓인 복음서에 손을 얹고 다시금 기도를 청하는 것이다.
“Et ego (given name) Cardinalis (surname). spondeo, voveo ac iuro, (imponendo manum super Evangelium) Sic me Deus adiuvet et haec Sancta Dei Evangelia, quae manu mea tango.”
“그리고 나 (세례명), 추기경 (속명)은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하오니, (복음서에 손을 올린다) 하느님과 제가 손을 얹은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
모두 퇴장(Extra omnes)한 뒤 이뤄지는 비밀투표에서도 추기경들은 앞에 나와 투표함에 표를 행사하면서 다시 선서한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를 증인 삼아, 이 표가 하느님 뜻을 헤아려 제가 뽑혀 마땅하다고 생각한 이에게 행사되나이다.”
이날 추기경 133명이 파올리나 경당에서 시스티나 경당에 모두 입장을 마치고 선서한 뒤 문을 걸어잠그는 데까지만 해도 90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으며, 이후 콘클라베 투표를 마치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데 당초 예상보다 길어진 2시간이 걸렸다.
첫째 날인 7일 저녁(우리 시각 새벽 4시) 1차 투표가 검은 연기에 그쳤다. 둘째 날인 8일에는 오전·오후 각 2차례씩 총 4회 콘클라베가 개최된다. 셋째 날까지 총 9차례를 투표해도 교황을 뽑지 못하면 하루 휴식하게 된다. 시스티나 경당 속 추기경단의 깊은 기도가 낳을 새 교황 탄생 소식은 경당 밖 광장에서 흰 연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