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바다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삶은 조용한 전쟁터가 된다. 특히 승진한다는 것은 단순한 자리 하나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자존심, 삶의 무게를 함께 떠안은 사투의 결과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세상의 문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은 날카로워졌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었으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무렵 나의 손은 기도로 향했다. 인간적인 방법은 다 써본 것 같았고, 이제는 하느님의 도우심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였다. 마침 독실한 신자인 선배가 있어 자문을 구했더니 새벽 미사에 나가 간절히 기도해보라고 한다. 다음 날부터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흐릿한 안개처럼 남아있던 불안이, 미사 도중 울려 퍼지는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에 조금씩 거두어지곤 했다.
두 달 남짓 새벽마다 조용한 성당의 어둠 속에서 기도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이루어 주시고, 아니라면 견딜 힘을 달라고. 어느새 주변에서는 내가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고 축하 인사까지 받았다. 사람들의 말에 마음이 들뜨고 감사 기도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꼭 될 것 같았다.
막상 인사 결과가 발표된 날,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외면하신 것 같았다. 인간적인 분노와 원망이 치밀었다. 새벽마다 드린 간절한 기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실망은 컸고, 신앙의 기둥마저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다.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올랐어야 할 그 자리에 오른 이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명예롭던 경력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새옹지마’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가. 그제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승진을 했다면 나 역시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평생의 공직생활이 치욕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은퇴 후 평화로운 글쓰기와 봉헌의 삶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하느님은 저의 기도를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보시고 내게 가장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신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한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겨질 때 쉽게 낙심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침묵 속에서, 때로는 고통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더 깊은 사랑과 보호의 손길을 건네신다.
돌이켜보니 하느님은 그날 새벽의 기도를 통해 나를 고통의 수렁에서 건져내셨다. 기도의 응답은 늘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것이 은총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조용히 되뇐다. ‘내가 한 기도보다 하느님은 더 큰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언젠가 또다시 삶의 언덕에서 흔들릴지라도, 나는 알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를 놓지 않고 계신다는 것을. 그분의 은총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미 흘러들고 있다는 것을.
조남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