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하늘의 메신저일까? 2013년 콘클라베 때는 비둘기가, 이번에는 갈매기들이 굴뚝 주변을 서성일 무렵 기쁜 소식이 왔다. 새벽에 교황 선출 소식을 듣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어느 분이 나타나실지 궁금했는데 이윽고 등장한 새 교황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었고 교황명은 ‘레오 14세’였다.
콘클라베 참여 추기경의 80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분들이니 교황의 뜻을 잘 이어갈 분이 뽑힐 것으로 믿었고, 가까이 불러 중책을 맡긴 교황청 장관 중에 한 분일 것으로 추측했다. 유흥식 라자로 성직자부 장관의 교황 선출도 기대했는데 주교부 장관을 맡으셨던 분이 뽑혔다. 새 교황은 어떤 분일까? 미국인 첫 교황,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첫 교황이라며 언론들이 소개했지만 충분치 않아 하루 종일 레오 14세 새 교황을 탐구했다.
교황이 되기 전 프레보스트 추기경의 70여 년 삶을 함축하는 키워드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와 ‘페루 선교사’일 것 같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두 형들과 미사 놀이를 할 만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페루에 파견되어 30대의 10년은 선교사로, 60대의 10년은 교구장으로 20여 년을 페루에서 살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려운 여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긴 세월이 그분의 삶에 깊이 배어 있을 것이다. 40대 이후 15년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관구장과 총장으로 살았다. 총장 재직 시절에 한국에 있는 수도회를 다섯 번 방문하실 만큼 전 세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를 돌보는 일에 열심이셨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2014년 말 수도회 총장 임기 12년을 마친 프레보스트 신부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로 서품한 뒤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소임을 맡겼고,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영성은 ‘일치’를 강조한다고 알고 있다. 자신과 일치, 이웃과 일치, 하느님과 일치를 통해 한마음 한뜻의 공동체를 꿈꾼다. 이런 영성으로 페루에서 선교사로 살아온 분이 교황이 되셨다.
‘레오’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는데 아마도 교황 레오 13세를 따르려는 뜻 같다.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해 가정과 노동과 인권이 위협받던 격동기에 국가, 고용주, 성직자가 할 일을 제시하고 ‘사회교리’의 토대를 마련한 레오 13세의 업적은 컸다. 가톨릭교회가 사회문제를 보듬어 안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말의 레오 13세처럼, 21세기 초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격동기의 또 다른 ‘새로운 사태’를 풀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같다. 교황 선출 직후 첫 인사 말씀 중에 ‘모두의 평화’, ‘무장이 해제된 평화’, ‘하느님과 세상의 다리와 같은 그리스도’, ‘대화와 만남으로 건설하는 다리’란 표현도 눈길을 끈다.
짧고 얕은 교황 탐구를 요약하자면, 레오 14세 교황은 ‘다리를 놓는 교황’이 될 것 같다. 필요한 때에 좋은 분이 뽑혀 큰 일을 하실 것 같다. 그분 홀로 일하게 하지 말고 우리도 함께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자. 젊은 날 즐겨 불렀던 젠노래 ‘다리’의 가사를 떠올리며 새 교황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필요한 곳마다 다리를 놓아주시라고. 남과 북 사이에도.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아, 만나지 못한 채 그 눈길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강은 장벽을 쌓는다.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양편 언덕을 갈라선 부자와 가난한 이들. 흑인들은 건너편 둑 위에 있는, 아- 백인 형제들을 멀리서 바라다본다. 어찌 강 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