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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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안다

[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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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작, 이브의 창조(The Creation of Eve)


인간 이성의 영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하느님은 과연 전지전능할까. 하느님은 당신이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창조할 수 있을까. 하느님도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이 있다면 전능하지 않은 것이고, 그런 돌을 창조할 수 없다면 역시 전능하지 않다. 또 아담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배꼽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배꼽이 없었다면 그런 인간을 완전한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또 최초로 창조된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었을까.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하느님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없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볼펜을 던진다고 마음먹으면 하느님은 그것을 막지 못한다. 하느님은 능력이 형편없어 보인다. 전능하지 않다. 나 하나 이길 힘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는 1~3차원에 발을 디디고 사는 인간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하느님은 인간 이성 영역 밖에 있는, 무한대 차원에서 존재하는 분이다. 인간 지성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느님이 거하시는 무한대의 차원,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무한대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다.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직접 허리를 굽혀 다가오시기 때문이다.(마태 28,20 참조) 태아가 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참으로 오묘한 방법으로 어머니와 소통한다. 그 소통의 끈은 사랑이다. 태아는 어머니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존재에 대해 논리적인 해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느님과 참으로 오묘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사랑을 느꼈기에 나는 하느님이 이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안다.

나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맘대로 산다. 하느님은 나를 이길 수 없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그런 나의 죄 앞에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리실 뿐이다. 이는 내가 1~3차원, 이성의 영역에서 삶을 꾸려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느님의 영역인 무한대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느님이 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무한대의 영역에서 오는 무한한 은총을 느끼기에, 그 신비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 인간은 하느님을 이길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쓸 수밖에 없다. 바닷가의 모래 알갱이보다 못한 나를 위해 우주의 창조주가 허리를 굽혀 직접 다가오신다는 그 큰 ‘복음의 기쁨’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 작,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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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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