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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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안다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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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들이 있다. 십대 초반에 만나 지금까지 헤아리기 무서울 만큼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타까운 첫사랑도 알고 꿈을 찾느라 흘린 땀도 알고 엄마로서 딸로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도 안다. 하지만 처음 만날 때는 똑같은 단발머리였는데 이젠 다르다. 살아가는 도시도 자주보는 사람도 지지하는 정당도 다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니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친구가 누구를 지지하는지는 물으나 마나다. 안다. 참아야 한다. 부자 지간이라도 종교와 정치 얘기 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니, 친구를 구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서 그 거짓의 선동에서 헤어나오라고 소리치고 싶다. 어떤 날은 그 후보가 싫으니 친구까지 이상하게 보인다. 이래저래 저 혼자 속이 시끄럽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같은 학교를 다녀 어릴 적부터 알고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는 사이, 이 사람은 친구일까? 지인일까?” 


예리한 질문이었고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선거에다 질문까지 겹쳐 복잡한 마음으로 무릎이 아프도록 걸었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보다가 ‘폭삭’ 울었다. 나를 울린 드라마는 ‘폭삭 속았수다’ 였다. 명장면 하나가 있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세상 풍파와 시련을 겪은 애순이 치매로 기억을 잃은 할머니 곁에 앉아 있다. 애순이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 이는 까막새가 안 갖다 주잖아, 이제 내가 해 드려야지.” 그때 할머니는 천천히 애순의 손을 잡고 말한다. “니 속 내가 안다, 내가 다 안다.” 


그 한마디에 애순은 눈물보가 터지고 만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세월의 기억을 다 지운 듯한 할머니였지만 실은 다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손녀가 가장 마음 아픈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힘들다 속상하다 말한 적 없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아도 알고, 보지 않아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속을 다 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안다는 것은 그런 힘이 있는 말이다.


그래, ‘친구’는 속을 아는 사람이다. 또 다른 나, 그래서 말 하지 않아도 그 속을 알고 눈물을 알고 짐을 아는 사람이다. 함께한 시간 속에 쌓인 깊은 이해, 그리고 형식보다 진심이 앞서는 마음,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연결이 바로 친구인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그의 짐과 허물을 같이 져줄 수 있다면 그는 절친이다. 우리가 언제 정당의 지지 성향을 보고 친구를 먹었던가! 그랬으면 이렇게 오래 함께 할 리도 없지만 친구일리도 없다. 그저 지인일 뿐. 그날 밤 굳이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읽었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를 고이 적어 친구에게 보냈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이것은 고백이자 다짐이었다. 너는 나를 아는 사람이므로, 나 역시 너를 앎으로.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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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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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41장 10절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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