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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일 주교 선종] 군 복음화와 가난·겸손·기도의 길 걸어간 작은형제 주교

유수일 주교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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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일 주교가 군종교구장 시절 병사들에게 간식을 직접 나눠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유수일 주교는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가난과 겸손, 기도의 삶으로 교회에 헌신한 참 목자였다. 제3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뒤에는 국내외 군사목을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목 방문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를 통해 군 복음화에 헌신했다.



작은 형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유 주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 남 돕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다.

유 주교는 젊은 시절 친구의 소개로 찾은 개신교 선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접하곤 개신교 전도사가 될 뻔했다. 그러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접한 후 하느님 신비와 섭리에 빠져들게 됐고, 이후 작은형제회 수도자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2년 주문진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듬해 그토록 원하던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첫 서원 전 수도생활의 어려움도 마주했다. 수련장에게 유독 꾸중을 많이 들어 집으로 갈 준비까지 했었다. 다행히 첫 서원을 발하는 허락이 떨어졌고, 유 주교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하느님 자비가 얼마나 크셨는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유 주교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체중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다. 추위를 많이 타 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지내야 할 정도였지만, 수도회 형제들이 많지 않던 때 주요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다. 특히 관구장이 된 뒤 형제들 양성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여러 형제를 유학 보내 현재 작은형제회가 교회 안에 영성과 학문에 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무척이나 검소했던 유 주교는 수도 사제 시절 몇 번이나 기운 양말을 신었고, 낡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다. 춥고 더울 때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통에 신자들이 택시비라도 쥐여주면 “걷는 게 나의 건강 비결”이라며 늘 사양했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는 “제가 작은형제로 불림을 받았을 당시 관구장이셨던 주교님은 면담 자리에서 ‘하느님은 형제가 행복해지길 원하신다. 그 길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셨다”며 “주교님께서는 모든 이가 하느님 안에서 행복해지길 바라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꼰벤뚜알 작은형제회 윤종일 신부도 “후배로서 학생 때부터 유 주교님께 수도자의 길을 배웠다”며 “가난과 작음을 몸소 실천한 ‘작은 거인’이셨다. 프란치스칸 수도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1980년 2월 5일 사제수품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유수일 주교. 작은형제회 제공

1992년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이었던 당시 형제들과 함께한 유수일 주교(가운데). 작은형제회 제공




제3대 군종교구장

군종교구장 임명이 발표되던 2010년 7월 16일. 이날도 유 주교는 청원소 부수호자(부원장)이자 수도회 대선배로서 조용히 소임을 하던 중이었다. 이기헌 주교에 이어 제3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유 주교의 축하식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소박했다.

유 주교는 “능력도 없고 부족한데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짧은 소감으로 교구장 주교직에 순명했다.

유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10년여 사목하는 동안 국내외 곳곳에서 나라를 수호하는 군인들을 찾아 격려하는, 장병들에겐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주교였다. 갓 세례받은 장병들에게 다가가 묵주를 채워주기도 하고, 환한 미소로 햄버거를 가져다주는 주교였다. 판문점·연평도 등 곳곳의 부대를 찾아 격려하고, 수차례 해외 파병 지역을 방문하는 등 동서남북 활발히 다니며 군인들을 위하는 주교였다.



동티모르 등 해외 파병지 사목 방문

유 주교는 동티모르·남수단·레바논 등 우리 군이 파병된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주교의 파병지 방문은 그 자체로 타지에서 군 생활하는 장병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유 주교는 2014년 1월 6~11일 동티모르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동티모르 교회 발전을 도모했다. 유 주교는 동티모르에서 살레시오 수녀회가 운영하는 라가 지역 여학생 고아원과 여학생 기술학교,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고아원, 돈보스코학교 등을 방문해 성금 2만 5000달러를 후원하는 등 따뜻한 선교와 후원도 아낌없이 실천했다.

그해 7월 14~22일에는 내전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남수단을 찾아 유엔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병된 한빛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2015년 10월 5~9일에는 레바논 동명부대 제16진을 사목 방문했고, 2019년 9월 23~28일 동명부대 22진을 만나기 위해 다시 레바논을 찾아 신자 장병들에게 견진성사를 줬다.

 
JSA성당 축성식이 유수일 주교 주례로 거행되고 있다.
유수일 주교가 2015년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앗 리미나 때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JSA성당 건립

유 주교가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둔 일은 JSA성당 건립이었다. 분단과 평화의 상징으로 최북단에 성전을 건립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주님의 사업이었다. 주교 집무실 한쪽 벽에 새로 지을 JSA성당의 전경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애착이 컸다. 2019년 드디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경비대대 안보견학관 맞은편에 JSA성당이 건립돼 봉헌됐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 떨어진 북한과 가장 가까운 주님의 집이 세워진 것이다.

JSA성당은 한국 교회 전체와 한국군과 미군, 민간의 노력이 더해져 탄생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 주교단이 2023년 6월 6일 성당을 방문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기원하는 장소로 거듭났다.



군 사목에 헌신. 코로나 19로 어려움 겪기도

유 주교는 군종교구장 착좌 후 군 영세자 수를 늘리는 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5년까지 군종교구에서만 매년 평균 2만 4000여 명의 영세자가 나왔고, 95가 병사들이었다. 전국 영세자의 20 이상을 군종교구가 차지했다.

하지만 젊은층이 종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군종교구 영세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군종교구 영세자 수는 3000여 명에 그칠 정도로 심각해졌다. 유 주교는 2020년 10월 매년 발표하던 군인 주일 담화 대신 호소문을 발표하고 “군종신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사목자들의 역할을 독려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듬해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플러스로 전환됐다.

한국의 작은형제로서 첫 주교품을 받은 유 주교는 이전 교구장들과 달리 군대 경험도, 군종 신부로서의 경험도 없었지만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며’ 군종교구를 위해 헌신한 후 교구장에서 은퇴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군종교구장 퇴임 후 본 소속인 작은형제회로 돌아간 유 주교는 예루살렘 성지 관구와 로마 등을 오가다 암이 발병돼 1년 8개월여간 투병했다. 유 주교는 투병 중에도 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찾았던 것이 수도복이었다. 유 주교를 간호하고 곁에선 본 여러 형제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주교님은 마지막까지 참으로 겸손한 작은 형제였고, 기도하는 수도자였습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유수일 주교 약력

1945년 3월 23일 논산 출생

1964년 대전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졸업

1973년 작은형제회 입회

1979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졸업

1980년 2월 25일 사제수품

1980년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보좌신부

1980년 - 1982년 마산교구 칠암동본당 주임신부

1982년 - 1985년 작은형제회 한국 준관구장, 명도원(외국인을 위한 어학원) 원장

1985년 - 1988년 수도자 신학원 원장

1990년 미국 뉴욕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영성신학 석사

1991년 - 1997년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

1993년 - 1995년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1997년 - 2003년 작은형제회 본부 총평의원

1999년 - 2001년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2003년 - 2006년 전주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보조자

2006년 - 2010년 정동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수호자

2010년 서울 청원소 부수호자

2010년 7월 16일 한국 군종교구장 임명

2010년 9월 15일 주교 수품

2010년 10월 13일 - 2021년 3월 10일 보건사목 담당

2010년 10월 13일 - 2021년 3월 10일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2021년 2월 2일 군종교구장 퇴임

2025년 5월 28일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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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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