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일 주교의 장례미사가 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주례와 한국 주교단·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거행됐다. 미사에 참여한 유가족과 군종교구 사제·작은형제회 수도자·재속프란치스칸·신자들은 유 주교가 남긴 목자로서 업적을 기리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기도로 배웅했다.
서 주교는 강론에서 유 주교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작은 체구에 허름한 옷차림이었지만, 수도자의 깊은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고 회고했다. 또 “새 양복과 구두를 권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참 많이 닮은 모습을 보이셨다”고도 했다. 이어 “구두 한 켤레로 전·후방을 돌며 병사들을 찾아다니셨고, 삶 전체로 가난과 겸손을 살아내셨다”며 유 주교가 지녔던 영성과 군종교구 영적 성장에 끼친 공로를 기렸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유수일 주교의 장례미사.
유수일 주교의 첫째 누나 유춘희씨가 기도로 마지막 배웅을하고 있다.
눈물의 고별식
고별식은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 주례로 눈물 속에 봉헌됐다. 유 주교의 첫째 누나 유춘희(마리아, 90)씨는 미사 내내 눈물을 훔치며 “어릴 적부터 착하고 똑똑했던 막냇동생이 먼저 떠나 슬픔이 크다”며 “하느님 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공군 장교 출신인 조카 손녀 조혜수(로사)씨는 “임관하고 가장 먼저 연락드렸더니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주시고, 뵐 때마다 밝게 웃으시며 큰 사랑을 주셨다”고 전했다.
황성준(군종교구 백마대본당 주임) 신부는 “군인 신학생 피정에서 처음 뵌 주교님은 옆집 할아버지 같이 친근한 분이셨다”면서 “모든 신학생 얘기를 경청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시던 모습이 가슴 깊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생전 유 주교와 인연을 나눈 작은형제회 수사들과 군종교구 사제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임형택(작은형제회, 수원 세류동본당 보좌) 신부는 “청원기 때 부원장이셨는데, 늘 성무일도와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며 “수도자의 정도(正道)를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라고 밝혔다.
유수일 주교 장례미사에서 작은형제회 수사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천안 성거산 작은형제회 관구 묘지에 안장된 유 주교. 작은형제회 제공
유리관 속 주교 위해 기도한 빈소
앞서 유수일 주교 선종 당일인 5월 28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성당에 유 주교의 빈소가 차려졌다. 작은형제회 수사들이 유 주교를 유리관에 안치했다. 유리관 속 유 주교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도복을 입고 있었다. 주교품을 받고도 늘 수도복을 고수했던 그는 마지막 길에서도 수도자로 남았다.
작은형제회 수사들의 위령성무일도가 이어졌고 작은형제들이 함께 바치는 차분하고 경건한 기도 소리가 성당을 채웠다. 수사들의 연도 중 빈소를 찾은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각자 유 주교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예비역 신자 장성들의 모임인 이냐시오회 회원 임관빈(이레네오)씨는 “유 주교님은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장병들을 돌보셨다”며 “선한 목자의 표본 같은 분으로 유머를 곁들여 항상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격의 없이 다가오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박수영(레아, 서울대교구 한강본당)씨는 “한국 청년 성체대회 때 본당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주셨는데, 왜소한 체구에도 밝고 힘이 넘치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재속프란치스칸으로서 먼저 가신 그 길을 저도 잘 걸어가겠다”고 전했다.
유 주교의 선임이자 제2대 군종교구장을 역임한 이기헌 주교도 빈소에서 “유 주교님은 군종교구를 영성적으로 풍요롭게 해주셨고, 그 덕분에 많은 장병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더욱 열심히 살아가게 됐다”며 “그 유지를 받들어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사도가 되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군종교구 총대리 이응석 신부는 첫 연미사에서 15년 전 유 주교가 군종교구장 임명일 수도복을 펄럭이며 나타나셨다고 전하면서 “그 순간 교구장직에 대한 깊은 열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특히 JSA성당 건립을 위해 전국 교구 주교들에게 편지를 보내 어려운 여건 속에도 끝내 성당을 완공해낸 집념을 기렸다. 또 “항상 밤 9시면 주무시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묵주기도와 성무일도를 바치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역을 막론하고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면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없으면 빌려서라도 베푸셨다”며 “병환 중에도 자신을 돌보던 간호사들에게 작은 선물까지 챙겨준 분”이라고 말했다.
지상 순례를 마친 유 주교는 천안 성거산 작은형제회 관구 묘지에 안장돼 먼저 하느님 품에 안긴 작은형제들과 함께 영면에 들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고별사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교황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대독)
“레오 14세 교황님은 우리 곁을 먼저 떠나신 유 주교님의 선종에 슬퍼하시면서, 주교님을 위한 사도적 강복과 기도를 약속하셨습니다.”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교황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대독)
“굳센 믿음으로 프란치스칸으로서, 군종교구장으로서 한국 교회를 위해 헌신하도록 삶과 사명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무한한 깊은 감사를 드리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착하고 충실한 종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상급을 충만히 누리실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박희전 신부 대독)
“이따금 만나면 수도생활과 군인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주교님 안에서 항상 프란치스코 성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건강을 걱정하셨는데, 천국에서 기쁘게 만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사이에 깊게 박혀있는 단절·다툼·미움·분리 등을 복음을 살면서 치유하고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염수정 추기경
“죽음조차 선물로 감사 찬미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임종이 주교님께도 주어졌으리라 확신합니다. 극진히 사랑하셨던 군종교구를 위해 하늘나라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해주십시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유 주교님의 삶과 신앙은 한마디로 ‘뒤늦게 주님을 만났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지상의 순례자인 저희를 위하여, 또한 주교님께서 생전 바라셨던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김찬선 신부(작은형제회)
“주교님께서는 ‘초기 원천으로 돌아갈 것’ ‘많은 일을 하려 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할 것’ ‘주님께서 신비로운 것을 많이 보여주셨다’는 세 가지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작은 형제였고, 기도에 충실하고 교회에 충성스러운 사제였으며, 당신을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따듯하고 어질고, 차별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이런 주교님을 우리 모두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