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5월 19일 바티칸 사도궁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의 예방을 받고 있다. OSV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국 태생 교황인 레오 14세가 미국 국적을 포기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페루 국적도 보유한 교황은 페루 당국에 바티칸 주소와 증명사진 등 개인 정보를 신고했다.
교황은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속지주의 특성상 미국 국적을 갖고 있으며 2015년에는 페루 시민권도 취득했다. 2023년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바티칸 국적까지 삼중 국적을 지니게 됐다. 그리고 지난 5월 8일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바티칸 시국의 수장이 됐다.
그런데 교황이 행정적으로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되면서 의전과 세법이 충돌할 수 있다. 물론 미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미국인이 고의로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 안보조치로 도입된 규정으로 미국 시민은 이중 국적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미국 여권을 사용해 미국을 출입국 해야 한다.
교황의 경우 행정적으로만 보면, 외국 지도자로서 지니는 면책 특권이 미국 시민권을 소지할 때 ‘어떤 미국 시민도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원칙과 상충될 수 있다. 더불어 세법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미국 시민은 국세청에 연간 세금 신고서와 재무 공개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베드로 성금이나 신자들의 기부금 등 바티칸 재정 상황이 미국 세무 당국 요청으로 타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계 매체 ‘더필라’는 이미 교황청 내부에서 교황의 미국 국적 포기를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 교황은 5월 30일 페루 외교 당국자들이 교황청을 찾은 자리에서 교황의 지문과 서명을 신고했다.
이에 전임 교황들이 바티칸 국적 이외 국적을 포기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린다. 교황청이 이에 대해 공식 공개한 적은 없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국적법상 아르헨티나 국적을 포기할 수 없어 2014년 여권을 갱신, 이중 국적을 유지했다. 455년 이후 1500여 년 만에 비이탈리아 출신 교황이 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각각 폴란드와 독일 국적을 포기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엔 미국 국적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 미국 태생인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2016년 영국 외무장관이 되면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 전 소말리아 대통령과 발다스 아담쿠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미국 국적을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