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미국 주교단 간 갈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 주교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적 우선순위에 집단으로 저항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
지난 5월 8일 선출 이후,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2년 재임 기간 내내 추진해 온 사목 방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2년 동안 세계 각국의 주교 임명을 담당하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 참모로 활동했다.
하지만 피조물 보호, 인종을 포함한 차별 반대, 이혼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 시노달리타스 등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교회에 제시한 여러 우선순위는 미국 주교회의에서 결코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270여 명의 미국 주교들은 이러한 교황의 사목 방향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노골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제 레오 14세 교황은 미국 주교단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초기 인사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교황과 미국 주교단의 관계는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보다 더 긴장될 수도 있어 보인다.
레오 14세 교황이 지금까지 미국에 임명한 4명의 주교 중 3명이 이민자 출신이다. 첫 인사는 5월 22일, 58세의 팜민쿠엉 주교를 샌디에이고교구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베트남 난민이자 보트피플 출신이다. 일주일 뒤, 교황은 니카라과 출신의 페드로 비스마르크 차우 신부를 뉴어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그리고 6월 5일, 우간다 태생의 사이먼 피터 엥구라잇 신부를 루이지애나주의 후마-티보도교구장으로 임명했다. 이런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톨릭신자 부통령인 JD 밴스가 선거운동에서 퍼부은 반이민자 혐오 발언과 정면으로 대조된다.
현재 미국에는 주교가 공석인 교구가 5곳이고, 현직 주교가 정년(75세)을 넘긴 교구가 20곳에 이른다. 여기엔 뉴욕과 시카고 같은 주요 대교구도 포함된다. 이는 레오 14세 교황이 즉위 초기부터 미국교회의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레오 14세 교황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만큼, 자신을 강력히 지지하는 블레이즈 수피치 추기경(76)의 유임을 당분간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많은 이는 뉴욕대교구장 티모시 돌런 추기경(75)의 거취를 주시하고 있다. 돌런 추기경은 처음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개혁에 맞선 미국 주교회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밴스 진영을 묵시적으로 지지하는 듯한 언행은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많은 다른 주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헌법상 종교 지도자는 특정 후보 지지를 피해야 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미국 주교들은 ‘낙태 반대’라는 하나의 사안을 유권자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사실상 정치적 태도를 취했다. 트럼프는 낙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 대통령 출마 전에는 스스로 ‘프로초이스’라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낙태 문제도 철저히 ‘거래 수단’으로 여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면 입장을 바꾼다. 이런 냉소적 태도는 미국 주교들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그들은 트럼프가 내뱉은 반그리스도교적이고 비인도적인 언행들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가 내세운 공약이 아니라, 그의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수사(修辭)였다. 거짓말, 여성 비하, 왕따, 사기, 약자 조롱, 욕설, 협박, 복수심, 회개 거부, 이민자 비인간화. 초등학교 2학년도 이러한 것들은 그릇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주교들은 이런 명백한 반그리스도교적 언동에 침묵했다. 왜냐하면 그가 보복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국 주교회의가 발표한 투표 가이드 문서를 미국 신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들이 주교들의 권고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의 증오와 반역적 행태에 대한 미국 주교단의 집단적 침묵은 59의 가톨릭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도록 방조한 셈이 되었다.
레오 14세 교황의 두 형제 중 한 명도 트럼프를 찍었다. 레오 14세 교황도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가족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실망은 자신이 존경했던 교회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거나, 비판할 용기가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교황이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주교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이것은 그의 교황 재임 중 가장 중대한 시험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전 세계적으로 증오와 분열을 퍼뜨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레오 14세 교황이 그와 정반대의 모습, 빛과 선, 연합과 평화를 이끌어 내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 주교들이 교황의 길에 동참하고, 그의 사목적 우선순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글 _ 로버트 미켄스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으며, 40년 가까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으며,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2014~2024)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