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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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전하는 침묵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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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한때 ‘비의 땅’이라 불렸다. 연중 절반은 비가 내리고, 안개 낀 하늘이 일상이던 곳. 그런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뜨거운 햇살을 일상으로 맞이했다. 푸른 하늘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현지인들조차 ‘이례적인 날씨(Unusual Weather)’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기후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뉴스는 아일랜드 일부 강과 호수에 녹조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청정지역의 상징이던 곳에 이상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단지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기온과 수온 상승, 농업 폐수, 산업 오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흐르던 물이 고이면, 생명의 물은 곧 죽음의 물이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맑은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세례의 상징이며, 내면 정화의 은총이며,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다. 그 물이 병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침묵이 깊어만 간다. 맑디맑은 물의 침묵 속에 이는 경고음을 듣는다.

 

 

비슷한 시기, 4월 말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수 시간 동안 국가 전체가 멈춰 섰다. 열차는 멈추고 공항은 마비되었으며, ATM과 통신도 끊겼다. 마트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도로는 멈춘 차량으로 가득 찼다. 원인 중 하나로 기후로 인한 대기 진동이 지목됐다. 포르투갈 전력 당국은 “스페인의 극심한 온도 변화가 드문 대기 현상을 일으켜 정전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자연의 균형이 무너지자, 전력이라는 문명의 축도 한순간 붕괴된 것이다. 

 

 

스페인은 전체 전력의 60 이상을 풍력과 태양광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 선도국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지 전력만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우리가 누리는 시스템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기후의 요동은 제도와 문명, 일상과 신앙까지 흔들어 놓는다.

 

 

선종하신 교종 프란치스코는 권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에서 “아무리 부정하고 숨기며 위장하거나 상대화하려고 하여도, 기후 변화의 표징들은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5항)고 하셨다. 이 말씀은 통계나 분석이 아니라 영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경종이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 그러므로 하느님의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자연의 법칙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한 균형을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62항)

 

 

하늘이 맑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자연의 질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취약한 존재들이다. 수도자의 삶은 본래 자연과의 조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기도와 노동이 하나 되는 삶은 자연의 리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자연이 아프면 기도도, 노동도 고통스러워진다.

 

 

이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마음의 전환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을 내려놓고 자족하는 삶을 익혀야만 한다. 물과 흙, 공기와 햇빛을 ‘자원’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공동 피조물’로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이 필요하다. 태양과 달을 형제요 자매로 부르던 성 프란치스코의 눈길 위에 간절한 염원이 담긴 실천 하나가 절실하다.

 

 

지구가 보내는 이상 징후, 이 지속되는 새로운 사태 앞에서 침묵으로 응답하며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침묵으로 답하며 움직이는 이들의 깊은 탄식과 소리 없는 외침은 희망이 된다. 그 침묵의 응답은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며, 고요히 고통받는 피조물들과 연결된 연대의 실천이다. 더 많은 소비의 흔적이 아닌 더 깊은 책임의 자취이다. 그리고 그 자취 위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 꽃을 피우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희망의 순례자인 우리 모두의 몫이 되었다.


 

 

글 _ 이은주 마리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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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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