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정체됐던 국정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김밥 한 줄 국무회의에 대통령실 직원이 과로로 쓰러질 만큼 새 정부는 ‘국정 바로 세우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출범한 지 겨우 보름 남짓. 내치(內治)를 넘어 정상 외교까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다. 안보 정책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을 선두로 주요 이해 당사국 정상들과 첫 전화 통화를 했다. 이어 외교·안보 라인 인선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자 정상 외교에 뛰어들었다.
캐나다 G7 플러스 정상회의(15~17일)에 참석했고 네덜란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제와 안보 다자 외교에 내치를 이유로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게 배경이다.
올해는 분단 80년, 6·25전쟁 발발 75주년이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 메시지에서 “안타깝게도 지난 3년간 한반도의 시계는 6·15 이전의 냉랭했던 과거로 급격히 퇴행했다”고 진단했다. 남북관계는 단절됐고 접경지역 긴장은 고조됐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는 다시 평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지난 11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이 대남 소음 방송 중단으로 화답했다. 또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Hanoi No Deal)로 멈췄던 북미 간 대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수령을 일단 거부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북한과의 소통은 계속 열어놓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8년 핵위기 상황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운운하며 핵 공격을 암시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그해 신년사에서 “내 책상 위에 핵 단추가 있다”고 응수해 긴장이 고조됐다.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평화의 사도’인 교황의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백만 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는 당시의 뒷이야기를 담은 저서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에 평화의 방주(方舟)를 건설하려 했고 이를 위해 평양과 서울, 평양과 워싱턴에 ‘평화의 다리’를 놓으려 했다.”
교황청의 외교 기조는 교황이 바뀌어도 한결같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가장 먼저 던진 말씀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첫 강복 메시지도 ‘평화’였다. “무장하지 않고 무장을 해제시키는 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를 호소했다. 이 대통령도 후보 시절 “새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 주시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약소국에서 초강대국에 이르기까지 각국 최고 지도자는 앞다퉈 교황을 만나기 위해 바티칸을 찾는다. 경제력과 군사력 등 물리적 힘이 제로인 교황청을 왜 찾는 걸까? 평화와 정의·인권 등 보편 가치를 실현하게 할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재임 기간이 짧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과 면담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구하고 중재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평화는 준비하고 행동할 때 온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평화가 흔들리면 경제도 안보도 일상도 흔들린다. 레오 14세 교황은 수도회 총장 시절 한국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한국통’이다. 특히 DMZ를 방문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안타까워했다.
이 대통령이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2018년 가동됐던 서울과 바티칸, 바티칸과 평양 간 외교 라인을 다시 복원해 미완의 ‘교황 방북 프로젝트’가 성사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