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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삶

구약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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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요나 3,5)

인류 역사에 찬란히 등장했다가 사라진 대 제국의 멸망은 외세에 의한 멸망이라기보다는, 나라가 부강할 때 통치자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무리한 건축 토목공사와 그로 인한 백성의 고혈을 짜는 끔찍한 세금 징수로 원성이 자자했던 때문이고, 또한 지도층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패와 타락이 멸망의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회개는 지도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니네베 왕국처럼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모두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튼튼하고 건강하려면,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 모두에게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 가장 청렴결백한 법관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분으로 칭송 받는 고 김홍섭 바오로 판사님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김홍섭 판사님은 1915년 일제 강점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법조인 가정에서 사환으로 허드렛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한 바가 있어 피나는 노력 끝에 1940년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이후 해방된 조국에서 서울 고등법원판사,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 고등법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판결을 내린 수인들을 찾아보고 돌보느라 늘 가난을 안고 살았고 그로 인해 가족들은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수인들과 사형수들의 아버지요, 대부로 사느라 도시락과 고무신은 물론 군복 바지를 염색해 입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사신 청렴의 법조인이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법조인들의 귀감으로 살았던 김홍섭 바오로 판사님이 1965년 3월 16일 50세를 일기로 선종하였을 때, 이 땅의 모든 언론은 눈물의 기사를 전송하였고, 그를 알던 모든 분들은 큰 슬픔에 잠기었습니다. 당시 서울 신학교 학장이었던 시인 최민순 요한(1912~1975) 신부님은 김홍섭 바오로 판사님을 추모하며 「고고한 등대 - 법관 김홍섭 님 영전에」라는 추모시를 헌시합니다.

“홀홀히 떠나버리시는가 / 한 마디 말도 없이 / 이냥 가고 마시는가 … 중략… 늘상 그 낡은 옷 고무신발에 / 내 입성 구두가 부끄럽더니 / 항시 가톨릭스런 웃음 그 밝은 모습 / 이젠 영영 뵈올 길 없구려 / 평생 좋은 일은 왼손도 몰래하고 / 영광일랑 남에게 주며 / 도적 같이 숨던 몸 … (중략) … 이제 몸은 두고 영은 올라 / 무상을 넘어선 새날 아침에 / 쉬시라 고이 쉬시라 / 사랑과 영광으로 짜진 평화 속에 / 그리워 애타하던 그 님을 길이 누리시라.”

김홍섭 판사의 재판에 배석하였던 다른 법관이 김홍섭 판사를 기억하며 쓴 글에는 이런 감동의 일화도 있습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피고인을 앞에 두고 자식을 타이르듯 온갖 정성을 다해 피고인의 심정을 수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신 뒤 판결을 내릴 때, “법의 이름으로 누구누구를…” 하다가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힌 김홍섭 판사는 한동안 눈물의 침묵 끝에 “불행히 세계관이 달라서 여러분과 저는 자리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어느 편이 죄인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며 형을 선고하여 피고인과 가족들, 방청객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김홍섭 바오로 판사님은 「준주성범」을 열 번 정독하고 다 읽은 날짜를 적은 뒤, 마지막으로 이런 성찰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무죄한 생활을 못 하오면 범한 죄나 합당하게 뉘우칠 은혜를 주소서. 어느 누구보다도 당신이 제일 잘 아시는 저의 죄 많은 일생을 멸시하지 마소서.”

과연 이토록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겸손의 삶을 살 줄 아는 의인이 많아질 때, 우리가 함께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하나 깨끗하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나 하나 환경을 위한다고 지구가 예전으로 돌아가겠는가?’ ‘나 하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고 불행한 사람들이 줄어들겠는가?’ 이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타락시키고 좀먹는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작은 나 하나에서 세상은 회개할 수 있고 비로소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꼴이 초라하고 남루한 요나가 회개를 외쳤는데도 니네베 시민들은 모두 온 몸으로 회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은 니네베 임금도 용상에서 내려와 회개의 삶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김홍섭 바오로 판사님 같은 의인 한 분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요나가 말을 건네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미소한 작은 외침에 저 큰 도시 니네베 사람들 모두가 회개의 길을 걷습니다. 과연 어느 시대이건 죄로 인한 타락의 모습이 보이고 멸망이 다가올 때, 누군가 예언자적인 희생과 사랑과 성찰의 삶을 외치는 이가 있어야 세상은 변화될 수 있고 다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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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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