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리타스 설립 50주년] 사랑의 반세기·희망의 새 출발 다짐
한국 카리타스 이사장 조규만 주교가 19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국제 카리타스가 한국 카리타스 5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그리스도와 성 메나스’ 성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1975년 6월 26일 인성회에서 출발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지 대표 기구로 역할을 해온 한국 카리타스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한국 카리타스는 이를 기념해 18일부터 사흘간 서울 명동 일대에서 반 세기 동안 주님 뜻에 따라 교회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랑(카리타스, Caritas)을 실천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50년을 준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랑의 통로가 된 반 세기? 국내외에서 전해진 축하·당부의 말
한국 카리타스는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며 사흘 동안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미사를 봉헌하며 사랑을 실천해온 지난 반세기를 자축했다. 18일과 2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개·폐막 미사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가 각각 미사를 주례하며 한국 카리타스의 반세기 역사를 기념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 더욱 힘쓸 새 50년을 함께 다짐했다.
이용훈 주교는 18일 미사에서 “한국 카리타스는 인성회라는 이름으로 당시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가진 것 없는 상태로 출발했지만, 50년 역사 동안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며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성장했다”며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은총과 사랑의 결과이고 함께 땀 흘려온 모든 카리타스 봉사자·후원자·은인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밝혔다.
가스파리 대주교는 20일 미사에서 “50년 동안 한국 카리타스는 가장 소외받은 이들에게 희망의 표징이 되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무관심과 마음을 닫는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고통받는 이웃과 진실하게 만나며 상처와 연약함을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기념식에 함께한 염수정 추기경은 “여러분은 삶을 통해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며, 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이 스며드는 통로이자 주님의 손과 발이 돼줬다”고 노고를 치하했다.
아시아 교회를 대표해 참석해 사흘 일정에 모두 함께한 아시아 카리타스 의장 베네딕트 알로 드 로자리오 박사는 “한국 카리타스가 50년간 실행하고 지원한 사업들에는 카리타스만의 고유한 정신인 사랑·헌신·연민·책임 그리고 가장 취약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이 자리는 인도주의적 봉사와 온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실천을 새롭게 다짐하고 재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축하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다가올 50년을 준비하며
한국 카리타스 설립 5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있던 19일 오전. 이날 서울대교구 새남터 성지에서 절두산 성지까지 이어지는 5.2㎞ 순례길에는 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회원과 전국 15개 교구 사회복지회(국)·한국카리타스협회·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임직원, 해외 카리타스 초청 인사 등 약 470명이 무더운 날씨 속에 구슬땀을 흘리며 걸었다. 지난 4월 제주교구를 시작으로 전국 교구에서 차례로 시작한 ‘릴레이 도보성지 순례’의 마지막 순례 여정으로, 참가자들은 천주교 서울순례길 중 ‘희망의 길’을 걸으며 두 달간 이어진 릴레이 도보 순례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한국 카리타스가 50년 역사 속에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한 새로운 50년을 다짐하는 시간도 됐다. 한국 카리타스에 따르면, 전국 교구에서 차례로 진행된 순례를 통해 총 48만㎞ 순례 여정이 펼쳐졌고, 1㎞당 1000원씩을 모금하는 것으로 환산해 모두 4억 8000여만 원이 모였다. 성금은 한국 카리타스가 앞으로 5년간 진행할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캠페인에 사용된다. 지금까지의 ‘이웃’ 의미를 확장해 전쟁과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이들, 이주민과 난민 등 ‘새로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정성환 신부는 20일 폐막 미사 중 진행한 캠페인 선포식에서 “이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국제 카리타스가 진행했던 지구촌 기아 퇴치 캠페인을 마치고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한국 카리타스 주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이란 새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보 성지순례는 한국 교회의 모든 카리타스인이 한국 순교성인을 본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여정이었고,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새 열정과 방식, 흐름을 따라 희망의 순례 여정을 계속 걷게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 카리타스는 18일 서울 명동 꼬스트홀과 가톨릭회관에서 △카리타스 시설 현황 및 종사자 영성 실태 연구 △한국 천주교 해외원조 현황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카리타스의 지원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카리타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속감과 고유성을 되짚는 시간도 가졌다.
가난한 이를 위한 나눔, 모든 신앙인의 일상으로
최재선 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사무국장이 1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인터뷰를 갖고 이날 열린 기념식에서 받은 특별공로상 상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저는 교회의 일꾼으로, 하느님의 도구로 쓰였을 뿐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카리타스 반세기를 축하하는 일정 중 19일 만난 최재선(폴리카르포, 84) 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사무국장은 30여 년간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복지·해외 원조사업에 헌신한 원동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수십 년간 교회의 손과 발이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었던 바탕을 주님에 대한 믿음 속에서 찾은 것이다.
최 국장은 이날 카라티나 젤베거 전 국제 카리타스 대북사업 실무 책임자와 전 한국 카리타스 대북지원 자문위원장 함제도(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서창원(요셉)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부장과 함께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1970년부터 미국 가톨릭 구제회(CRS)에서 활동하며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1975년 한국 카리타스의 모태가 된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에 공헌했고, 이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사무국장 등을 맡아 2003년까지 30여 년을 교회 복지사업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 카리타스에서 활동한 수많은 이들 가운데 4명에게만 주어진 상을 받았음에도 최 국장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상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손사래 쳤다.
“공로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상을 받으면 나중에 천주님 대전에 가서 말씀드릴 공로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느님이 허락해주신 길을 따라갔을 뿐인데 제 공로인 것처럼 상을 받는 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겸손한 발언과 달리 최 국장은 한국 교회 복지사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교회 사회복지사업 출발을 함께하며 한국 교회가 ‘나누는 교회’로 나아가던 시기 핵심 임무를 수행했으며,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주교단이 첫 해외 원조에 나설 것을 결정하던 당시 현장에서 실무를 도맡은 이도 최 국장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복지 실무자로서 1993년 주교회의에서 매년 1월 마지막 주를 ‘해외 원조 주일’로 지정해 이때 모인 성금이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을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일상’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해외 원조를 시작하며 사례를 찾아보니 일부 단체는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모금을 유도했는데, 이는 우리 교회로서는 굉장히 비복음적이란 생각이 들었죠. ‘해외 원조 주일’은 2000년간 쌓아온 교회 조직을 활용하는 동시에 모든 이가 사랑을 실천하도록 격려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 사회복지의 시작과 도약을 함께했던 최 국장은 교회의 사회복지 미래를 묻자 “저는 20세기 사람”이라며 “21세기 복지를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신 “오직 하느님께 충성한다”는 원칙만을 따르라는 것이 ‘신앙 후배들’을 향한 선배의 조언이었다.
“신앙을 지닌 이들에겐 하나의 원칙만 있으면 됩니다. 오직 하느님께 충성하라. 그 정신과 믿음을 가진다면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신다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습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