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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월간 꿈 CUM] 즐기는 꿈CUM _ 영화 (18) 혼돈을 예감하는 불안(不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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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악(惡)이고 무엇이 선(善)일까요?

흔히 얘기하는 선과 악의 구분 또한 우리의 좁은 시선에 따라 규정되기 마련이지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거대한 자연질서 앞에서는 미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정한 선악의 개념 따위는 너무도 하찮은 것이 아닐는지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분분한 영화입니다. 타이틀부터가 간단치 않지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터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청정한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산골 마을에 글램핑장(고급 야영장)이 들어서려 합니다. 대도시의 기업이 코로나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서 만만한 시골 동네를 대상으로 급조한 프로젝트입니다. 야영장의 대형 정화조는 수질오염을 부를 게 뻔하고, 야영객의 급증은 산불의 위험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상류에서 한 일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줍니다. 돈벌이에만 급급해선 안 돼요.” 사업 설명회는 성토장으로 변하고 맙니다.

주민들을 다시 설득하라는 지시를 받은 기업 직원들은 마을의 여론을 주도하는 ‘타쿠미’를 찾아옵니다. 카메라는 계곡과 강을 오가는 그들의 동선을 지루하리만큼 따라갑니다. 그러던 중 타쿠미의 딸이 실종되고 영화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집니다. “문제는 균형이야.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져.” 태초부터 엄존해온 유구한 자연은 선악(善惡)과 같은 인간의 가치판단에 가둬질 수 없습니다. 자연의 변화가 인간에게 이로우냐 해로우냐 따위를 따져 물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공존의 균형이 깨질 때 자연은 낯설게 돌변하고, 그 섬뜩한 혼돈(混沌) 앞에서 인간은 다만 무력할 뿐입니다. 영화는 생태나 환경의 문제를 넘어 ‘자연의 낯설어짐’에 대한 ‘지극히 불길한 예감’을 관객에게 전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은 공포 말입니다. 감독은 충격적인 라스트씬을 통해 불안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상은 느린 은유로 가득합니다. 그 의도적 여백 안에서 관객은 ‘뭘 얘기하려는 거지?’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더불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인류세’(人類世)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질서에 적대하며 환경을 훼손해온 시기를 뜻합니다. 이 무도한 인류세의 말기에 우리가 마땅히 간직해야 할 두려움을 영화와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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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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