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6월 1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일반 알현하고 있다. OSV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 하에서 숨진 프랑스 성직자·평신도와 독재자 프랑코 정권 출범이 촉발된 스페인 내전 당시 숨진 성직자 등이 순교자로 인정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6월 20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프랑스 성직자 및 평신도 50명과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6~1938년께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124명의 순교를 인정했다. 순교자로 인정될 경우 시복시성 절차에서 기적 심사가 면제된다.
나치 수용소에서 숨진 프랑스 그리스도인들은 1944~1945년께 순교했다. 이들은 독일 점령 하에서 프랑스 정권 해방과 레지스탕스 활동 등 명목으로 체포됐다. 당시 활동은 1943년 나치 괴뢰 비시 정권이 의무 노동법을 제정하자 프랑스 국민이 독일로 강제동원(징용)된 것에 따른 저항 의식에서 비롯됐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지원하라는 당시 파리대교구장 에마뉘엘 슈하르 추기경의 권고가 있었고, 순교자들은 독일로 가 이들을 지원했다. 결국 독일 당국에 ‘전복 활동’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장티푸스 등으로 병사하거나 교수형·총살형에 처해졌다.
프랑스 순교자들은 라이몬드 케레 신부, 작은형제회 제라르 상드리에 신부, 로저 발레 신학생, 평신도 장 메스트르 등으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 4명, 교구 사제 9명, 신학생 3명, 가톨릭 스카우트 14명이다. 순교자 80 이상은 선종 당시 30세 미만으로 알려졌다. 제일 어린 순교자는 21세다.
교황청 시성부는 순교를 인정한 이유로 나치가 신앙에 대한 증오·신앙 혐오에 뿌리를 두면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순교자들이 ‘사도적 행동’으로서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해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와 반그리스도교적 이념에 저항한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순교한 이들은 스페인 하엔교구 출신이다. 교구 사제 109명, 수녀 1명, 평신도 14명 등이다. 앞서 스페인 내전 당시 순교자는 2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이미 시복된 순교자들도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무신론(유물론적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은 젊은 혁명가들이 교회를 모독하고 종교 지도자들을 처형한 바 있다. 시성부는 혁명 게릴라가 반그리스도교적 정서로 순교자들을 박해했다고 설명했다. 순교자들은 ‘신앙 혐오’에 대항한 순교(odium fidei)를 인정받았다.
하엔교구장 치코 마르티네스 주교는 “이 땅은 수 세기 동안 순교자들의 피와 증거로 축복을 받았다”며 “이들이 뿌린 씨앗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열매를 맺었다”고 기쁨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