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앞줄 왼쪽 두 번째) 교수가 지난 6월 20일 열린 교황청 희년 위원회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발언하고 있다. OSV
교황청 희년 위원회가 발간한 희년 보고서. 희년 보고서 표지 캡처
교황청이 세계 가난한 나라와 이웃들의 부채 탕감을 촉구하고 나섰다.
교황청 희년위원회는 6월 20일 사회과학 아카데미를 열어 ‘빚 탕감과 개발위기와 인간 중심의 지속 가능한 국제 경제를 위한 재정 재단 설립의 청사진’이란 주제 희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6월 희년을 앞두고 반포한 칙서 「희망은 실망하지 않는다」의 일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국 정부에 가난한 나라의 대외 부채를 탕감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통해 관용을 베풀 것을 요청했다. 이에 윤리 원칙에 기반한 국가 부채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위원회가 설립됐고, 보고서가 위원회의 결과물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전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 마르틴 구스만 등 경제전문가 30여 명도 참여했다.
위원회는 국제금융시스템을 사람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차원에서 보고서를 마련했다. 위원회는 “글로벌 금융은 (소수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구에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 부채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급증했다. UN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공공부채는 97조 달러(약 13경 2356조 원)다. 2022년 대비 5.6조 달러(약 7641조 원) 증가한 수치로 2010년 51조 달러(약 7경 원)의 2배에 가깝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60를 넘는 아프리카 국가 수는 2023년 27개국(2013년 6개국)이며, 현재 개발도상국의 절반은 정부 세수 중 최소 8를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는데, 10년 전과 비교해 2배로 증가했다. 54개국은 이미 정부 수입의 10가량을 국채 이자로 내고 있다. 위원회는 “부채 위기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발전 저해를 촉발한다”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빈민가에서 소녀가 호스로 물을 받고 있다. OSV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시스템은 채권자의 책임이 더 크다”며 “채권자는 위험을 잘 관리하는 이들이다. 대형 민간 채권자의 대출 남용을 억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원회 역시 대형 펀드를 비판했다. 위원회는 “대형 펀드가 고위험 대출을 조장한다”며 “더 낮은 금리로 대출할 수 있도록 다자간 개발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국제금융시스템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도구로 전환해야 한다며 조치와 권고를 제시했다. 민간 시스템과 유사하게 국가의 국제 파산 메커니즘 구축, 민간 투자자에 대한 정부 구제금융 중단, 위기에 처한 국가에 브리지론(단기 대출의 한 유형) 및 단기 재정지원 제공 등이다.
희년을 기념해 교회가 빈국의 빚 탕감을 촉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사회 교리에 기반해 최빈국 부채 탕감 촉구 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희년 2000’ 캠페인의 시발점이 됐다. 이 운동으로 1000억 달러 이상 부채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