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탈출 21,24)라는 구약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원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힘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피해를 봤을 때, 딱 입은 손해만큼만 죄를 물어야 한다는 법이었다.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에도 이와 똑같은 법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구약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취지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테러가 과도한 전쟁을 부르고, 그 전쟁이 더 큰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수십 수백배 더 큰 상처를 줘야 그나마 분이 좀 풀리는 것이 요즘 세태다.
구약은 혼자 힘으로 가려다 길을 뱅뱅 돌고(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고) 신약은 길을 물어서(사랑의 예수께 의지해서) 간다. 신약이 없다면 구약은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약속으로 남는다. 전쟁과 좌절, 약속이라는 구약의 수프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신약의 후추가 곁들여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느님은 약속하셨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이 구약의 실현이 신약이다. 신약의 예수는 하느님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한 신약 사랑의 배가 ‘아직’ 우리 마음에 상륙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앞바다에 정박 중이다. 맥아더 장군은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서울을 탈환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구약의 전쟁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신약의 신앙을 우리 마음에 상륙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탈환해 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구약 전쟁 중인 내 마음에 신약 사랑이 상륙했으면 좋겠다. 그 신약의 사랑이 고통받는 삶 안에서 탈환되었으면 좋겠다. 배신과 다툼, 눈물의 구약 고지에 믿음, 희망, 사랑의 신약 승리 깃발이 펄럭이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직 내 마음에 상륙하지 못한 신약이 저 멀리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지 마!
더 많이 소유하고 싶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해!
완전한 소유는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해!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